피아니스트 박종훈 "리스트 연습곡은 단거리 경주"

16일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회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단거리 경기라고 생각하면 되요. 숨을 참고 뛰는 단거리 경주처럼, 짧지만 농축된 곡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폭발시켜야 하죠"

 

탄탄한 연주력과 카리스마 있는 외모, 대중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많은 팬을 두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16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독주회를 통해 국내 최초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에 도전한다.

 

 

 

뛰어난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였던 리스트가 1852년 작곡한 '초절기교 연습곡'은 제목 그대로 고난도의 기교가 요구돼 피아노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난곡이다.

 

3-10분 분량의 12곡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 대해, 역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슈만은 "세계에서 이 작품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야 10-12명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아내 치하루 아이자와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와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최근 용산에 위치한 음반사 '루비스폴카' 사무실에서 만났다. '루비스폴카'는 박종훈이 지난해 초 설립한 클래식, 재즈 전문 음반사.

 

올해로 마흔에 진입한 그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집중력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며 "한 자리에서 12곡 전곡을 치기엔 부담스러운 곡이지만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1년 발매된 첫 음반 수록곡으로 리스트의 음악만을 선정해 연주한 것에서 엿보이듯 리스트는 박종훈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이 곡은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가 젊은 연주자들의 연습을 위해 만든 곡이예요. 리스트가 알고 있던 모든 기교가 망라돼 있죠. 빠른 곡은 빠른 곡대로, 느린 곡은 느린 곡대로 조금도 쉴 틈이 없어요"

 

그는 "빠른 곡은 손을 쉴 새 없이 교차하며 쳐야 하고, 느린 곡은 단순하게 느린 곡이 아니라, 손가락을 어떻게 쓸지, 소리에 어떤 색깔을 입혀야 할지 고민하면서 쳐야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곡 하나 하나가 짧지만 굴곡이 뚜렷하고,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어 마치 드라마12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거예요"

 

드라마를 연상시킨다는 그의 말처럼 연습곡 5번에는 '도깨비불', 6번 '환영', 7번 '영웅', 8번 '사냥', 9번 '회상' 등의 표제가 붙어 있다.

 

그에게는 연주 뿐 아니라 클래식 대중화를 위한 활동도 중요하다.

 

그는 지난 4월부터 KBS 클래식FM의 'FM 가정음악'을 진행하고, 대중가요에 웅장하고 화려한 클래식 사운드를 덧입혀 관심을 끌고 있는 '예술의전당 팝스 콘서트'의 편곡을 맡는가하면, 아나운서 이금희와 함께 '친절한 금희씨, 베토벤을 만나다'로 전국 순회 공연을 열고 있다.

 

"연주자의 자기 만족만을 위한 음악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2002년부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음악회를 시작했는데, 클래식과 친하지 않은 청중들이 음악에 대해 솔직하게 반응하는 걸 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음악이 지겨우면 중간에 자거나, 나가고, 음악이 좋으면 경청하는 청중의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며 대중을 클래식 음악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결국 음악가들 하기 나름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죠"

 

그는 "앞으로도 '친절한 금희씨…'류의 교육적 성격의 콘서트를 계속할 생각"이라며 "여러 작곡가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시리즈를 통해 청중과 클래식 음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시절 교내 록그룹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클래식과 록, 클래식과 재즈 등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크로스오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요즘 세상에 음악의 장르를 따지는 게 무의미한 것 같아요. 2002년에 뉴에이지 음반을 냈는데, 결국 그 음반을 사서 들었던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회에도 찾아 오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음반사 '루비스폴카'를 통해 클래식과 재즈, 크로스오버 분야에서 14장의 음반을 내놓았다.

 

그 중, 지난 여름 나온 비올리스트 가영의 '탱고의 꽃' 음반은 시장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재능은 있는데 피어날 기회가 없는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음반사를 직접 만들었어요. 클래식과 재즈, 팝을 넘나드는 특색있는 음반을 선보이며 내년에는 일본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2만-5만원. ☎02-780-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