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보도되는 신종플루 사망자 수치를 보면 자못 심각한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확진환자들이 무사히 넘기는 경우를 보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유엔총회에서 말한 "신종플루는 백신을 팔려고 만든 파괴무기"라는 자극적인 언사가 곱씹어지기도 한다. 우리반 학생 33명중 한 명만 신종플루 예방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는데 다른 학급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실제 어떠한 자본의 음모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백신을 만든 회사는 일확천금이 보장된 것이다. 백신을 신청하지 않은 학생과 부모의 신념은 소박한 것이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언젠가 책에서 본 '위생권력'이라는 무소불위의 막대한 힘이리라.
기껏 환절기 감기나 앓고 살아온 내가 병원신세를 크게 진 적은 세 번 정도이다. 첫 번째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얼굴의 광대뼈가 부서져 수술을 했을 때이다. 외과적 시술이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병원에 의존했고 작은 흉터가 남았지만 그 때 의술은 나에게 구세주였다. 두 번째는 결혼 전날 손저림이 극도로 심해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다음날 결혼식만 마치고 손저림 원인을 찾기 위해 입원하여 검사를 받았던 때이다. 신혼여행을 취소하고 병실에서 일주일간 검사를 했으나 원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비행기를 탈 경우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고 겁주던 의사의 경고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출산할 때였다. 한 지인이 집에서 남편의 도움으로 자연분만했다는 얘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다. 산파와 함께 집에서 치르던 출산이 산부인과학의 출현으로 진료과목의 하나로 전환된 역사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기에. 그러나 끝내 남편을 설득하지 못하고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했다. 막상 산통으로 정신없을 때 옆에 의료진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던 나는 영락없이 '의학권력'에 기대는 소시민의 모습이었다.
내가 경험한 의학은 이처럼 때로는 생명수였지만 미지수 같기도 했으며 무리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늘 의료전문가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러나 신종플루 파장은 오히려 나를 일깨워주는 게 많다. 정체모를 '신종' 인플루엔자의 공포는 위생권력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신종플루 확진검사 없이 증상만으로 타미플루를 처방해주는 병원에 기대는 요즘은 의학권력의 남용을 의심할 틈도 없게 만들지만 그래서 더욱 미심쩍다.
확진판정을 받은 아이들과 함께 지낸 딸에게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려야 하는 애매한 잠복기 동안 나의 일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완전히 바뀌었다. 학교가 쉬어도 학원은 불야성을 이룬다는 보도는 또 얼마나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지. 남편의 우스개처럼, 차라리 빨리 신종플루 확진을 받아 정확한 타미플루 처방을 받고 항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닌가 싶다.
/정한나도(이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