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비견되는 영화제작이 꿈"

'미술로 그린 영화' 展에 초대된 이진호 미술감독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감독 송해성)의 여주인공 문유정(이나영)의 방엔 깨져 있는 거울이 있다. 이는 세 번씩이나 자살기도를 했을 만큼 예민한 그가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마구 집어던졌음을 암시하는 단서. 그가 사용하는 팔레트엔 마구 눌러 짠 물감과 아무렇게나 비벼 끈 담뱃재로 뒤범벅돼 있다.

 

이처럼 인물의 미세한 감정까지 디자인 한 화면 뒤 마술사는 바로 이진호 미술감독(35). 국내 최초로 영화미술전문학교인 레이크사이드를 만든 그가 전주국제영화제의 기획전'미술로 그린 영화'에 초대됐다. 17일 오후 4시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는 영화미술의 또다른 감동에 관해 설명했다.

 

"처음엔 미술감독이라고 하면 영화 세트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5년 사이 연출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배우들의 미세한 감정까지 연출하는 정도가 됐죠. 김지운 감독의 영화'달콤한 인생'을 보면 김형철씨와 이병헌씨가 총질을 엄청 해대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현실적이지만, 관객들은 잘 몰라요. 배경에 깔린 빨간색이 사람을 흥분시키거든요. 관객들도 거기에 빠져버린 겁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연출감독보다 미술감독에 우위를 둘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촬영 전 무대 세트에서부터 촬영 후 편집까지 관여해야 하기에 숨쉴 틈 조차 없을 만큼 고된 작업. 환상만 갖고 이 길에 들어섰다가 중도 포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그는 한국적인 현실에 맞는 영화미술교육을 위해 영화미술전문학교를 만들었다.

 

"최근 영상문화는 서로 다른 장르와 뒤섞이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영화가 침체기에 있지만, 다시 부흥기를 맞게 되면 좋겠어요. 할리우드 영화에 뒤쳐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영화를 제작하는 게 저의 꿈입니다."

 

이 감독은 '와니와 준하', '야수', '싱글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을 제작, 현재 KBS 드라마 '아이리스' 에도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