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대만으로 해외취재를 다녀왔다. 13일께부터 으슬으슬 몸살기운이 있더니 귀국을 해서는 드디어 복합증상이 나타났다. '신종플루' 취재 좀 했다는 '깜냥'에 자체진단해보았더니 의심이 갔다. 신종플루 치사율은 0.03%. 인플루엔자 독감의 0.1%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불안하지는 않았다. 15일 회사에 출근했으나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퇴근을 서둘렀지만 기사를 마감하고나니 밤 9시 30분. 전북대병원 신종플루진료센터에 갔다. 검진을 서둘렀던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70대인 어머니는 비만, 당뇨까지 있는 고위험군이라서 나로 인해 감염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두고 부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비싸데요?", "그래도 어떻게 해. 아이 건강이 중요하지." 아이 건강도 걱정되지만 신종플루 검진비가 큰 부담이 되었나보다. 체온을 쟀는데 36.8도다. 고열이 없는 신종플루 확진자도 있다고 하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반가운 얼굴, 신종플루 권위자인 이 병원 감염내과 이창섭 교수다. 이 교수는 "기자들도 검진도 받아봐야 좋은 기사 쓰지"라며 증상을 묻더니 의심이 간다며 검진을 하자고 했다. 호흡기 분비물 채취용 면봉이 콧속 깊숙이 들어왔다. 좀 아플 거라더니 '좀이' 아니라 '많이' 아팠다. 이 교수는 "의심이 가니까 검진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확진을 받은 거라 생각하고 조심해서 생활하라"고 일렀다. 당분간 어머니와 겸상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진료소를 나오면서 계산을 하는데 검진비가 진료비 등을 포함해 9만8000원이다.
본보가 이달 3일 기준으로 도내 신종플루 확진환자를 연령대별로 분석한 기사(11월 4일 1면)를 보면 확진환자 3419명 중 30대는 122명으로 3.6%, 40대 이상은 131명으로 3.8%에 불과하다.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이 땅의 아버지들이 사진 속에 없는 건' 아니듯 우리네 부모들이 경제적 부담에 확진검사를 꺼려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가검물을 채취한 뒤 비용 얘기를 듣고 검사를 포기하는 중년이 많다고 한다.
인근 야간 당직병원에서 타미플루를 받아들고 집에 와 어머니 몰래 먹었다. 다음날 아침, 상태는 더 안 좋아 졌다. 자꾸 잠이 오고 머리도 아픈 듯해 항간에서 우려하는 심한 두통과 환각작용 등 타미플루의 부작용이 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저는 의심환자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수를 했더니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몇몇 회사 선배들은 그날 밤 감염이라도 된 듯 몸살 기운이 엄습했다고 한다.
이날 저녁 술 한잔 하자는 전화가 세통 왔지만 '의심'이란 말에 '건강해라'라며 모두 제안을 거뒀다. 검진 25시간만인 16일 밤 11시 10분, 문자메시지가 왔다.
'신종플루 검사결과 음성으로 신종플루 감염이 아닙니다.'
기분이 묘했다. 휴가를 날린 듯 하기도 하고, 양치기 소년이 된 듯도 하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정체모를 서운함이 들었다.
그래도 내심 걱정이 크셨다는 어머니는 "이제야 맘이 놓인다"며 좋아하신다. 재택근무는 놓쳤지만 건강하다는 것, 참 좋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