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지방의 논리 - 정치는 지방에 맡겨라

(32)<호소카와 모리히로·이와쿠이 데쓴도 지음, 김재환 옮김, 삶과꿈, 1993>

저자 : 호소카와 모리히로. (desk@jjan.kr)

얼마 전 일본에서 1년간 지내고 온 어느 대학교수에게 일본에서 가장 인상깊게 느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나왔다. "지방이 살아 있다!". 농촌 마을에도 젊은이들이 많은 건 물론이고 그들이 경쟁에서 뒤처져서 남은 게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갖고 고향을 지키겠다고 의욕을 펼쳐 보이는 이들이 많더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일본의 저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일본의 수도권 집중도 심각한 편이라 오래전부터 수도 이전이 거론되기도 했다. 지금도 실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말이다. 최근 세종시 논란의 와중에서 세종시 수정을 주장하는 이들이 일본 사례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걸 보고 혀를 끌끌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수도권 집중도는 한국 수도권 집중도의 절반 밖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서도 수도 이전이 거론될 정도라면, 일본보다 두배의 집중도를 갖고 있는 한국에선 무언가 크게 느끼는 게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나름의 문제는 많다곤 하지만 한국에 비해 비교적 지방이 살아 있는 일본의 균형발전은 어떻게 해서 가능했던가? 나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와 이와쿠니 데쓴도가 쓴 「지방의 논리: 정치는 지방에 맡겨라」(김재환 옮김, 삶과꿈, 1993)라는 책을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싶다. 이 책 하나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아니라, 이 책이 일본 지자체 장들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미 20년 가까이 된 책이지만, 나는 모든 지자체 장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일본에서 1991년에 출간된 이 책 저자들의 당시 직책은 각각 구마모토현 지사, 이즈모시 시장이었다. 일이나 열심히 할 일이지 왜 이따위 책을 쓰는가? 선거를 앞두고 홍보용으로 낸 건 아닌가? 한국 같으면 그런 말이 나올 법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이 책에 담긴 주장들이 도발적이다. 선정주의로 느껴지기보다는 진정성이 강한 걸로 느껴진다. 각 글의 제목이 다 슬로건이다.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정치는 지방에 맡겨라." "중앙에 대한 콤플렉스를 불식하라."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지방이 돼라."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다." "지방에야말로 꿈이 있다." "지방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지방의 논리'로 무장하라." "청년들이여 고향을 지향하라."

 

이들은 '지방의 반란'만이 경직되고 편중돼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일본의 정치·경제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지방이 일본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입으로야 누군들 그런 말 못 하나. 그렇게 비아냥대는 사람이 있을까봐, 호소카와는 "나라가 변하지 않으면 지방에서 변해 보이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지난날 참의원 의원으로서 국정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 나의 꿈이 부풀면 부풀수록 중앙정계의 정체(停滯)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그렇다면 차라리 지방에서 소신껏 에너지를 발산해 보고 싶었고 '장대한 내 소신'을 실천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라가 변화하지 않으면 지방을 바꾸겠다'고 결의하고 고향인 구마모토의 현지사가 된 것은 1983년의 일이었다. 그후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구마모토를 목표로, 또한 전국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웅장한 현을 목표로 삼아 노력해왔다."

 

이에 질세라 이와쿠니는 "청년들이여 고향을 지향하라"고 외친다. 그는 "최근에 도쿄대학법학부, 교토대학법학부의 학생 2명이 찾아왔다. 호경기를 반영해서 최고로 잘 팔리는 처지의 이 두 학생이 중앙관청에도 대기업에도 취직하지 않고 지역발전을 위해 고향에 돌아오고 싶다고 하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이야기를 신문 잡지에서 읽고 또 TV에서 보고 한번 직접 만나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하는 그 진지한 뜻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 자신을 돌이켜 볼 때 22세 시절에 이런 결심은 없었다. 도쿄의 기업이나 관청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심하고 인생을 영위할 수 없을 것 같은 편견과 지방에 돌아가 버리면 시대의 흐름에서 영영 떨어져 나가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었다. 물론 당시와 현재와는 지방의 모습과 행정이 많이 잘라졌지만 그때 나는 이 두 학생에게는 아득히 미치지 못하는 결단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학생이 지역발전 가운데서 인생의 좌표를 찾아 곧장 자기 고향에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의 경우엔 한국이 일본의 서너배 되는 집중도를 갖고 있음에도 이와쿠니가 도쿄의 대학 정원 축소를 강력 주장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도쿄에는 세계적으로 보아도 학생이 너무 많다. 일본처럼 학생을 꾸역꾸역 수도에 모으는 나라는 없다. 영국에서도 우수한 대학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는 런던에 없으며 미국의 프린스톤, 예일, 하버드, 스탠포드 등 대학들이 대도시가 아닌 인구 10만명 정도의 교육환경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중략) 도쿄에서 2할 정도 대학을 줄인다면 지방에서 도쿄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현저히 감소할 것이다. 중앙은 용단을 갖고 도쿄의 대학감축을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고보니, 착잡하다. 우리는 중앙에 대한 '반란'보다는 '순종'을 잘 해야 지역발전이 잘 이루어지거나 잘 이루어진다고 믿는 체제이고, "청년들이여 고향을 떠나라"가 인재육성정책의 일환으로 부추겨지는 처지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의식의 문제가 아닌가. 물론 구조가 그런 의식을 만들었겠지만, 한번 형성된 의식은 구조와 무관하게 습속이나 고정관념으로 지속되는 법이다.

 

사실 최근의 세종시 논란은 지방의 무의식과 무기력을 드라마틱하게 입증해보인 사건이다. 지방은 늘 '을(乙)'이요 '졸(卒)'이기 때문에 중앙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중앙 권력자들이 믿는 '지방의 논리'다. 지방민들이 갖고 있는 '지방의 논리'도 크게 다를 게 없다.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중앙에 한발 또는 두발 들여놓으면 된다는 '각개약진(各個躍進)'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앙이 아무리 괘씸해도 이제 더 이상 중앙을 탓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지방이 "정치는 지방에 맡겨라"고 외칠 수 없는 지방정치의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지방에 대한 중앙의 불신과 폄하도 그런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지금 "내 탓이오, 우리탓이오" 운동을 하자는 거냐고 짜증을 낼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난 반세기의 역사는 지방 내부의 각성과 활력과 야망이 없이는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충분히 입증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게 옳으리라.

 

모든 지방민들이 "냅둬, 나 그냥 이대로 살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존중받을 일이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방 스스로 새로운 '지방의 논리'를 세워 나가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지방민들은 생업 종사에 바쁘니, 그런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지자체 장들이다. 새로운 '지방의 논리'를 세우고 전파할 전도사가 전북지역 지자체 장들 가운데 나오길 기대해본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