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해 국보 승격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어진이요, 역사적 의미나 미술사적 가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보는 보물로 지정될 만한 건축물이나 유물 등의 유형문화재 중, 인류 문화적으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이나 희귀한 것에 한해 지정된다. 태조어진은 이 점에 딱 들어 맞는다.
우선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경기전에 어진을 봉안한 것은 1410년 무렵이다. 임진왜란때 정읍 내장사를 거쳐 아산 등지로 피난시켰다가 1597년에 묘향산에 안치했다. 1614년 경기전이 중건되자 전주로 이관해 봉안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으로 옮겼으며 1767년 대화재 때는 전주향교에 피난시켰다. 그 뒤 1872년 어진이 너무 낡아 새로이 모사해 봉안하였다.
지난 2000년에는 전주이씨 종친들의 실수로 일부가 찢기는 수난을 당했으며 고궁박물관에서 반환을 거부해 환안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태조어진은 전주 사람들의 600년에 걸친 뜨거운 의지로 지켜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임금 27명의 어진중 3점(태조 영조 철종)밖에 남지 않았으며 그중 철종의 어진은 1/3이 불에 탄 상태다.
미술사적으로도 태조어진은 전신상(全身像)으로 유일하며 생생한 색채에서 뿜어 나오는 위엄은 높이 평가된다. 입체감을 나타낸 익선관과 얼굴을 음영법으로 표현한 기교가 뛰어나,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승정원일기'에는 이 어진을 정면관을 훌륭히 소화해 낸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보(補)와 견룡(肩龍)의 이금(泥金)효과에 의하여 엄정한 품위가 양양하다고 한다.
태조어진은 전주가 조선조 창업의 탯줄이요, 전주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의미를 지닌다. 즉 전주의 자긍심과 연결된다. 나아가 전통문화중심도시의 원형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철저한 준비를 통해 태조어진이 국보로 승격되는 경사가 있길 기대한다. 각계의 성원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