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조선왕조 무삭제 다큐 '승정원일기'

사건 현장에서 실시간 진행과정 기록…역사적 진실 밝혀

조선시대 승정원은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같은 성격으로 국왕의 명을 들이고 내보내는 왕명 출납을 기본 임무로 한 기관이었다. 정책 개발과 집행부서인 6조가 업무 현안에 대해 보고할 때는 반드시 승정원을 거치고, 국왕의 결재 사안 역시 승정원을 통해 각 관청으로 하달됐다.

 

국보 30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는 이런 보고와 결재 사항을 자세히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날씨에서부터 국왕이 하루 동안 진행한 갖가지 일들, 각종 회의와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 등 모든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써내려간 국정의 기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으로 불타버려 광해군 이전의 것은 남아있지 않으며 현재 전해지는 「승정원일기」는 288년 동안의 기록으로 모두 2억4250만자가 적혀 있다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서 바로 기록한 1차 자료이기때문에 조선 시기 절반의 기록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의 5배 정도 되는 분량이며 중국에서 가장 방대한 역사기록물이라는 「명실록」(2964책, 1600만자)보다도 훨씬 분량이 많다.

 

"나이가 차도 결혼하지 못한 사람의 기준을 몇 살로 정함이 좋겠는가?"(영조)/"남자는 30세로 하고, 여자는 25세로 해야합니다"(선혜청 당상 민백상)/"남자는 30세가 좋을 듯하나, 여자를 25세로 하는 것은 너무 늦어 23세로 함이 좋겠습니다"(좌의정 김상로)/"그러면 남자는 30세로, 여자는 23세로 하는 것이 좋겠다"(영조)

 

「승정원일기」는 영조 33년(1757) 2월 5일의 기록으로 나이가 차도 결혼하지 못하는 자를 지원할 대책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이 국회 속기록을 읽는 듯 생생하다. 항상 왕의 옆에서 모든 상황을 속기(速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건이 있고 나서 결과를 놓고 그 과정을 재구성하는 기록이지만 '승정원일기'는 사건 현장에서 실시간 진행되는 과정을 시간대에 따라 차례로 기록한 것이어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가치가 크다.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는 난을 진압하던 과정에서 나타났던 이광좌 등 소론 세력의 공로가 모두 삭제되는 대신 영조가 처음부터 침착하게 진압을 지휘한 것으로 기록된 데 비해 '승정원일기'에는 영조가 크게 당황하는 모습과 이광좌를 비롯한 소론 대신이 왕을 안심시키는 내용이 그대로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