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북도, 경남도, 충북도의 연구 용역 의뢰에 따른 한국헌법학회의 항소법원 설치 타당성 연구용역 결과 발표가 있었다. 이 연구결과의 큰 줄기는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고등법원 수가 부족한 만큼 18개 지방법원 소재지별로 항소법원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헌법학회의 항소법원안 제시를 계기로 법원의 항소재판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법원의 항소심 재판 제도는 지방법원 합의부 판사가 재판한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지방법원 단독판사가 재판한 사건은 같은 지방법원 항소부에서 재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이원적 구조는 국민들이 편리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는데 지장을 주고 있어 문제이다.
우선 고등법원이 설치된 서울, 대구, 광주, 부산, 대전 5곳을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고등법원 재판을 받기 위해 타 지역까지 가서 재판을 받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그로 인한 시간과 비용 등 부담의 증가로 심지어 항소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고등 법원이 없는 지역 국민들에 대한 재판을 받을 권리, 법원에 대한 접근이나 재판 받는 비용 시간 노력 등에서의 불합리한 차별이다.
다행히 전북지역은 10여년 간의 전주고등법원 유치노력의 결과 지난 2006년 광주 고등법원 전주부가 설치되어 전주에서 고등법원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사건 적체 해소를 이유로 지난 2008 년부터 광주고등법원 전주원외재판부로 변경하여 현재 일부는 원외재판부가, 일부는 광주고등법원에서, 일부는 순회재판으로 전주에 와서 재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재판부 증설은 하지 않고 전주부 관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서 재판하는 것으로 여전히 전북도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연구 용역 발표에 의하면, 최근 몇 년간 전주, 창원, 청주지방법원의 고등법원에 대한 사건수가 청주는 대전고등법원의 약 25%, 전주, 창원은 광주, 부산고등법원의 약 30%를 넘는다고 한다. 이것은 고등법원이 없거나 전주, 청주, 제주와 같이 원외재판부조차 설치되지 않은 지역 주민들은 고등법원 재판을 받는데 있어 많은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편 지방법원 단독판사가 한 재판을 같은 법원에서 항소재판을 하는 것도 문제다. 왜냐하면 같은 지방법원에서 항소 재판을 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하급 법원에서 재판한 것이 옳은지 상급 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하려는 심급제도의 기본 정신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경력이 짧은 배석판사가 재판장인 부장판사와 함께 항소재판을 하는 것은 헌법상 독립적인 지위에 있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이원적 구조로 인한 문제 해소를 위해 항소법원 설치는 장기적인 과제로 하고 과도기적인 대안으로, 2개 이상의 재판부 설치를 전제로 고등법원 지부를 일부 지방법원 본원에 선별적으로 설치하려는 방안을 제시하고 관련법 개정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법원의 방안은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부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의 불편함과 지방법원 항소부가 여전히 유지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볼 수 없다.
이제 조만간 국회에서 항소법원이나 고등법원 지부 설치를 위한 관련법 개정 절차가 시작될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과 전북도민을 비롯한 국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재정적, 인적 여건이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같은 현실적인 조건에 부합하면서도 모든 국민들이 편하고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항소심 재판 제도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활발히 벌여나가야 한다.
/안호영(변호사·참여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