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예계와 일본 서예계 모두 서예가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전주역사박물관 녹두관에서 열린 '2009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국제학술대회 및 2009 한국서예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김병기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은 "광복 후 한국 서예는 대부분 도제식 교육으로 이뤄지다 보니 문하생을 중심으로 한 계파는 용이하게 수립됐지만, 철학적 지향과 작품의 경향을 중심으로 한 유파는 형성하지 못했다"며 "계파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는 한국 서예계는 공모전의 심사문제를 비롯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이같이 밝혔다.
'한국 서예, 유파 형성의 필요성 연구'를 발표한 김 감독은 "계파는 출신이나 연고, 이권 등에 의해 결합된 배타적인 모임으로 근본적으로 다른 조직과 소통이나 교류를 기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하고자 하는 조직인 반면, 유파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순응하다가 같은 줄기로 모여드는 사람들끼리 같은 환경과 같은 생각 속에서 같은 방향을 추구하기 위해 결성한 모임"이라고 정의한 뒤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지향을 의미하는 철학이 내재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광복 후 한국 서단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원로 서예가들이 최근 10년 사이 연이어 작고하면서 원로층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2세대들의 경쟁이 은근히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그러나 진정한 실력으로 원로의 위치에 서려고 하기 보다는 단체를 조직하고 사람을 끌어들여 서단의 권력자로서의 원로 자리를 확보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서예 단체의 정치성 짙은 단체장이 원로의 자리를 대신하는 심각한 폐해 발생의 가능성도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서예의 유파 분화와 계보 현황'을 발표한 우오즈미 카즈아키는 "일본의 요미우리 서법전과 마이니치 서도전은 일본 서단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운영자이든 출품자이든 양쪽 서예전에서 모두 활동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직의 비대화가 일본인의 서도에 대한 열정을 반영한다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조직과 유파 준수를 우선시 함으로써 서예가 개개인의 존재성을 찾기 어렵게 한다는 문제점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서예비엔날레가 취소되면서 공연되지 못했던 서예퍼포먼스 '필가묵무'가 공개됐다. 협소한 무대 탓에 축소공연된 '필가묵무'는 서예와 무용, 음악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로, Do Dance그룹이 춤 추는 동안 서예가 여태명 리홍재 이주홍씨가 무대 위에서 '서예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로'를 서예로 썼다. 리씨는 "서예를 정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필가묵무'란 말처럼 붓은 노래하고 먹은 춤추는 굉장히 동적인 예술"이라고 소개했으며, 이씨는 "살아있는 예술로서 서예 역시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며 서예 퍼포먼스의 의미를 전했다. 또한 서예비엔날레 동안 선보였던 서예 교육 프로그램 '신래-e필'을 개발한 장병황 대만 담강대 교수가 직접 참석, 프로그램 개발 과정과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