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발효식품이 발달했고 사랑받아 왔다. 상 위에 발효식품 한 두 개쯤 없어서는 한국인의 식사라 하기에 왠지 서운할 정도다. 오랜 시간을 거친 발효의 오묘하고 깊은 맛은 그 어떤 음식보다 사람의 입맛을 유혹하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김장을 담그는 풍습은, 요즘엔 보기 힘들다고도 하지만 아직 필자의 시골집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늦가을 배추를 거두어서 소금에 절여 물에 씻어두고 온갖 양념을 무채와 함께 버무려 배춧잎 사이사이에 속을 집어넣어 만드는 김치. 방법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지금도 김장은 겨울나기를 위한 어머니의 가장 큰 일이다.
물론 필자는 이 간단한 과정조차도 생략하고 시골집에서 김장김치를 가져왔으며 더 간단한 방법으로 발효의 모든 과정을 김치냉장고에게 맡겼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발효를 위한 최상의 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맞춤형 김치냉장고를 필자는 무한정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음식이 제 맛을 갖기 위해서는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음식의 잡맛이 없어지고 균형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음식의 '숙성'과 사람의 '성숙'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성숙'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더 훌륭한 인격체가 될 수 있고 인생이 균형 잡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발효'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되는 사람도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은근히 '익힌' 사람의 냄새가 배어 나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갈수록 요상한 악취를 풍기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청춘은 얼마나 잘 익어가고 있을까. 사실 우리 젊은 세대는 제대로 익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풋내가 날 때가 있다. 소금의 짠맛도 알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서 결국 상해버릴 것 같을 정도로 염려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소금에 절여진 세대가 바로 우리 젊은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청춘은 짜다 못해 씁쓸하다. '발효'란 맛과 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처럼 같은 세대에서도 온도차가 심하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이 두 가지의 경우가 확실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 풋내가 난다 싶으면서도 심하게 절여져있다. 때문에 이 시대 청춘의 맛은 더욱 요상스럽다. 어쩌면 이것은 위태로울 만큼 화려한 우리 사회의 모습 때문인가도 싶다.
청춘은 깊은 맛을 내기 위해 과정을 충실하게, 또한 묵묵하게 밟아가야 할 시기이다. 너무 풋내 나는 청춘도, 너무 소금에 푹 절여진 청춘도 결코 맛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놔둬도 청춘의 시간은 흘러가겠지만 그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청춘이 부패가 아닌, 진정으로 발효되기를 희망한다. 잘 숙성된 김치처럼 그야말로 제대로 익힌, 사람 사는 맛이 날 때 까지.
/이현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