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의 역사는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했던 시기와 같다고 할 만큼 역사가 깊다. 그래서 가축의 질병은 그것을 먹고 사는 인간의 주된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글로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현재, 인간의 전염병 가운데 WTO/FAO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 중 200여 종이 가축 또는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조류인플루엔자, 결핵병, 브루셀라병 등)이다. 전통적으로 쌀을 주식으로 하던 우리 먹을거리 문화는 1970년대 산업화를 시작으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1980~90대 초반에 육량 증대를 이끌어 냈으며, 90대 후반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 축산식품 위생과 안전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안착시키게 된다. 이를 반증하듯 농산품 7대 품목 중 쌀을 제외한 나머지 6개 품목(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우유, 계란, 오리고기)이 축산식품이며, 우리나라 총 먹을거리 중 축산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40%를 넘어섰다. 때문에 축산식품을 매개로 한 인수공통전염병 발생을'강 건너 불구경'만으로 여길 수 없을 듯하다. 과거 인간 및 동물에게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됐던 질병들이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발견될 가능성 역시 매우 높아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12월 14일에는 경기도와 경상북도 양돈장 및 수입중인 씨돼지에서 신종인플루엔자가 발생하여 혹시 변종이라도 생기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0년과 2002년의 구제역 발생과 연이은 2003년, 2006년, 2008년의 AI 발생은 이미 그 가능성을 현실화 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생 당시 축산업은 초토화 돼 직접 피해액만 수천억원대였으,며 간접 피해는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또한 악성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건강은 위협받고 국가 경제의 근간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인수공통전염병 및 악성가축전염병(AI, 신종플루, 구제역, 결핵병) 검사 등 가축방역의 최일선을 책임지고 있는 축산위생연구소의 그 역할과 책임이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마디로'내우외환'이다. 밖으로는 지구촌 국가간 무역 환경의 변화로 한·미, 한·EU, 한·동남아시아 등 무협협정이 체결됐거나 진행중이다. 이는 우리 1차 산업인 축산업에 분명한 악재다. 또한 안으로는 여전히 전문 축산 경영체가 부족하며 축산농가의 수준 역시 낮아 생산성 면에서 선진국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도 행정 의존도가 높은 실정으로 이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축산업 선진화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이 뿐만 아니라 AI의 주요 전파 원인인 철새는 해마다 남방과 북방을 제집 안방 드나들 듯 오가고 있어 열악한 축사시설에서 사육되고 있는 우리의 가축은 늘 전염병에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지금이 우리에겐 기회이다. 그간, 우리는 구제역과 AI를 경험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갖게 됐다. 아울러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장점들은 우리가 축산업을 선진화하는데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질병진단, 인수공통전염병 색출·도태는 물론 최신 축산정보 제공 및 질병 전파 방지를 위한 컨설팅 등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찾아가는 행정서비스, 신뢰받는 검사 기반구축, 열정 어린 민원 처리로 무장할 때 우리는 축산 가족를 포함한 전도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것이고 축산업은 지금보다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간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관이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소통행정, 공정 검사, 신속대응 등 열린 마음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힘을 합쳐 가축전염병을 근절시켜 국민건강을 보장하고 축산업 선진화를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육대수(전북도 축산위생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