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35)<신경민 지음, 참나무, 2009>

"우스운 소리로 뉴스 마칩니다. 김승연 회장 폭행과 관련해 요즘 직장인 사이에 유행하는 얘깁니다. 만약 삼성, 현대, 엘지의 아들이 맞았다면 이 재벌 총수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란 질문이 돌아다닌답니다. 답은 이렇습니다. 삼성그룹의 아들이 맞고 돌아왔다면 정황과 대책을 A4 한 장에 빨리 정리하라고 지시했을 거랍니다. 현대그룹의 아들이 맞았다면 불도저로 북창동을 재개발했을 거라는군요. 엘지의 경우가 재미있습니다. 다른 재벌 특히 삼성이 어떻게 했을지 빨리 파악하라고 지시했을 거랍니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신경민 앵커가 2007년 5월 15일 MBC 라디오 8시 뉴스인 '뉴스 광장'을 진행하면서 내놓은 클로징 멘트다. 앵커의 클로징 멘트를 묶어 해설을 덧붙인 책이 있는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신경민 앵커의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 뉴스데스크 앵커 387일의 기록」(참나무)은 그런 책으로 최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쏠쏠한 재미까지 던져주니, 이거 참 묘한 일이다.

 

아시다시피, 신 앵커는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면서 권력을 비판하는 클로징 멘트를 한다는 이유로 앵커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어느 날 문득 나의 권력 비판 멘트를 주목하게 된 한쪽 사람들이 나를 자신들의 반대편으로 여기고 공격하기 시작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07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은 나를 반노로 여겼고 이명박 후보 측은 반이로 분류했다. 내 고향과 출신 학교를 근거로 술자리급 추론을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확대 재생산했다. 오랜 기간 내 멘트를 따라가보면 역대 모든 정권과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현재의 살아있는 권력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사적으로 친밀한 인물이 대통령이 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순간부터 기꺼이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가 비판적 자세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게 신경민을 보는 올바른 자세다. '반이, 친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당파적 관점에서 신경민을 찬양하는 건 신경민에 대한 올바른 대접이 아니다. '선한 권력'이란 원초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는 법이다. 어떤 권력이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언론의 숙명이다. 신경민은 그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앵커였다. 이걸 이해해야 신경민이 제대로 보인다.

 

참여정부를 비판한 그의 클로징 멘트를 2개만 감상해보자.

 

"참여정부의 조치 중에는 참 기발한 것이 좀 있습니다. 오늘 나온다는 취재 선진화 방안도 거기에 해당할 겁니다. 언론의 취재와 기사 작성에 분명히 고쳐야 할 점은 있고 완강한 측면이 있지요. 그건 빨리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자실 문 닫고 못 만나게 하라는 방식은 참으로 독창적이고 창조적입니다. 이런 방안도 문제겠지만 더욱 한심한 일은 대통령이 이런 비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할 때 한번 더 생각하도록 간언을 하는 참모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 참모란 사람들은 독재에 대항하면서 언론 자유와 조직 내 비판과 언로 활성화가 중요하다가 입에 달고 다닌 사람들이거든요."(2007년 5월 22일)

 

"어젯밤 투표 결과를 보면서 억누르기 힘든 국민의 분노를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분노의 뿌리는 집권자의 일방적인 정책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집권층의 오만한 언행에서 나온 것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선에서 승리하기까지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일단 집권층이 된 이후에는 겸손과 신중 모드로 가야한다는 것이 기본 이치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 대선을 살펴보면 선거 이전과 이후에 집권층이 너무나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대선 이후 갑자기 서울시내의 고급 양주가 일제히 동이 나 집권층이 취했다는 말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일관성이 중요하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집권층 꼭대기 한두 사람만이 아니라 전체가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게 쉽지 않으니까 선거가 필요하고 자유 언론이 있어야 할 겁니다."(2007년 12월 20일)

 

오늘의 시점에선 이런 클로징 멘트가 이해가 안갈 수도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빨리빨리' 정신이 가장 강한 나라의 국민답게 망각의 속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염려됐는지, 신경민은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인다.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드물어졌지만 2007년 12월 대선 결과에서 국민들은 참여정부에 대한 적대감과 미움을 감추지 않고 여실하게 드러냈다. 대통령과 인간 노무현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실망, 노무현스럽지 않은 것에 대한 추구가 지배했다. 참여정부의 슬로건이 지도자의 말과 행동, 실제에서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데 혐오감을 보였다."

 

그랬다. 그런데 노무현 서거로 인해 모든 게 다 뒤집혔다. 좋건 나쁘건 '한판 뒤집기'는 한국사회의 익숙한 풍경이다. 아니 어쩌면 한국인의 유전자는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만 됐다 하면 '원조 병'에 걸리는 것도 그 탓이리라.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면서 이 책을 읽는 금요일(11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을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명박 정권은 건국 60주년인 2008년을 '선진화 원년'으로 선포했었는데, 왜 그렇게 '원년'을 좋아하는 걸까? '선진화 원년'에다 '국가 브랜드 높이기 원년'이라니, 그 이전엔 선진화나 국가 브랜드 높이기 시도가 없었던 말인가? 이전 정권들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딱지를 붙이며 각자 '원조'임을 내세웠는데, 이명박 정권은 그런 딱지 대신 '원년'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인가?

 

흥미롭게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신경민의 책에서 '5년마다 다시 시작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글이 등장한다. 맞다. 바로 이거다. 표현이 기가 막히다. 대한민국은 5년마다 다시 시작한다. 긍정적·생산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다. 부정적·파괴적으로 다시 시작한다. 이전 정권에서 했던 모든 것은 다 갈아 엎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잘못된 것을 갈아 엎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이 '원조'요 '원년'임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인정 욕구'나 정략적 계산으로 눈에 핏발이 선 채 무조건 갈아 엎는다.

 

앵커를 갈아 치우더라도, 그 앵커가 과거엔 어떠 했었는가를 살펴보면 좋으련만 권력자들은 권력을 갖는 순간 갑자기 '아메바'가 되는 모양이다. 신경민은 바로 그런 단세포적 광기의 희생자가 되었다. 어떤 점잖은 이들은 앵커는 단순 진행자에 머물러야 하는데, 신경민은 그 선을 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미국 앵커의 신화가 된 월터 크롱카이트는 높게 평가한다. 크롱카이트는 린든 존슨 대통령이 재선 출마를 포기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만큼 강력하고 적극적인 멘트를 한 앵커였는데, 왜 크롱카이트가 하면 멋있고 신경민이 하면 안된단 말인가? '홀로서기'와 '독립'을 저주하고 '여유'가 메마른 문화와 더불어 '5년마다 다시 시작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신경민의 멘트에 그 답이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5년마다 다시 시작하지 않기 위해선 신경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