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정양시인 첫번째 산문집 '백수광부의 꿈'

세상 향한 꼿꼿한 비판…교직생활 향수·사회적 그늘에 대한 시각담아

"술과 친구는 묵을수록 좋다는데 글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시사적 사회적 소재를 다루는 글이 특히 그렇다. 주제넘게도 나는 그런 시와 산문을 더러 썼다. 묵을수록 맛있는 글, 그런 글에 대한 그리움이 새롭다."

 

느릿느릿 흘러나오는 그의 말투처럼, 그의 산문집은 늦게 찾아왔다.

 

정양 시인(67)의 첫번째 산문집 「백수광부의 꿈」(작가). "책을 엮으면서 곰팡내 역겨운 그런 글들을 상한 음식 버리듯 버렸지만, 버리지 못하고 남은 글들의 유통기한에도 딱히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날카롭지만 깊고 또 따뜻한 시선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차마 버리지 못한 글들도 있었다. 책의 2부에 실린 20~30년 묵은 아주 오래된 글들이 그렇다. 음식 중에 향수식품이 있는 것처럼 교직생활의 향수가 소박하게 서려 있는 글들. 비교적 덜 오래된 글들이 실린 1부는 '헌화가의 신화적 여건' '백수광부의 꿈' '그 영전에 촛불을 켜지 마십시오' 등 문학을 통해 문화적·사회적·정치적·역사적 그늘들에 대해 접근한 글들이다. 3부는 지난 참여정부 시절 북학에 갔을 때 쓴 북한 기행문과 그 이듬해 중국 산동사범대학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썼던 토막일기와 문인들에게 쓴 편지글이다. 그는 "쓰는 김에 좀 더 꼼꼼히 쓸 걸 너무 대충대충 썼구나 싶어 후회가 많다"고 했다.

 

안도현 시인은 "이 책에는 시인으로서의 정양과 비평가로서의 정양, 그리고 선생님으로서의 정양이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세 사람은 저마다 따스하고, 품이 넓고, 때로는 엄격하다. 시력 40년을 넘긴 한 시인의 생을 관통하고 있는 의식의 물줄기는 세상에 대한 꼿꼿한 비판정신으로 합류한다. 역사와 현실의 좌절을 개인의 좌절로 수렴하여 생을 약진시키는 이러한 정신은 가히 지금은 우리한테서 멀어진 곧고 정한 선비의 풍모를 연상시킨다. 그렇다. 깊은 강은 역시 크게 물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소한 것에서 위대함을, 비루한 것에서 장엄함을 느끼게 해주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고은 시인이 연전에 어느 일간지에서, 나를 보면 석정 선생 생각이 난다고 밑도 끝도 없는 글을 쓴 적은 있지만 내 생각에는 얼굴 생김생김은 말할 것도 없고 키만 해도 나는 좀 어색하고 껀정해 보이고 신석정 시인은 보기 좋게 훤칠한 편이다.'나 '당신은 매사에 엄벙하고 어리숙해서 걱정인데 이참에 이병천 선생과 같이 가게 돼서 좀 마음이 놓인다고, 매사에 똘밤똘밤한 이병천 선생만 줄곧 따라다니라고 아내는 몇 차례나 못을 박는다. 똘밤똘밤이 아니고 똘방똘방이라고 고쳐주면서 나도 몇 차례나 고개를 끄덕거렸다.'처럼, 곳곳에 숨겨진 '인간으로서의 정양'을 발견하는 재미도 크다.

 

김제가 고향인 시인은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지난 7월에 펴낸 「철들 무렵」 등이 있으며, 판소리평론집 「판소리 더늠의 시학」과 시화집 「동심의 신화」 등을 발표했다. 아름다운작가상, 백석문학상, 모악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