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소재호 시인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

"아득한 내면을 살피는 고백"

소재호 시인(64)의 시를 읽으면 '친화력과 다감함'이 떠오른다.

 

"나를 비우고 상대를 나에게 들여 놓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삶의 태도가 스며있다. 하지만 시인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진실들이 내 시의 그늘이 됐다"며 "내가 움켜쥐고 있던 일상은 대개 위선이었다"고 털어놨다. 7년 만에 펴낸 시집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시학)는 자신의 어둔 뒷등이나 아득한 내면을 살피는 고백서다.

 

시인은 "전북문인협회 회장, 원광문인협회장에 선출되면서 요 몇년 사이 너무 바빴다"며 "다작형이 아니라 더딘 작업에 4~5년에 걸쳐 쓴 시들"이라고 말했다.

 

시엔 거창한 구호나 심오한 이론이 등장하진 않지만, 담백한 시어들로 짧게 형상화됐다. 표제작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는 '배롱나무는 / 조상의 원죄(原罪)까지 / 바들바들 떨었다'가 전부.

 

"배롱나무는 무덤가에 심는, 작은 나무예요. 조상의 죄까지 물려받은 표상이죠. 우레(천둥)가 어둠을 감싸면서 어긋난 것들을 바로 잡는다는 것을 형상화하고 싶었습니다. 어둠과 빛, 침묵과 함성이 대립되면서도 조화된다, 원죄까지도 씻어준다는 순수 지향이 담겼죠."

 

간단 명료한 시어들은 '나'보다는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자연에 순응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담담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의 늪을 건너면서 가슴에 묻어 두었던 사랑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시'무화과나무'에선 심금이 서로 울리며 꽃 없이도 얼얼하게 맺히는 사랑이, 시'한 그루 은행나무로'에선 노오란 사랑의 밀어가 흩날리는 광경이 담겼다.

 

남원 출생인 그는 원광대를 졸업했으며 전주완산고 교장을 마지막으로 36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쳤다. 198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전북문단 주간, 전북문인협회장, 원광문인협회장, 전북예총 이사 및 감사 등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이명의 갈대」, 「용머리 고개 대장간에는」등을 펴냈으며, 다수의 문집과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