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우리의 놀이터 하수처리시설 - 한상준

한상준(전주지방환경청장)

"냄새가 많이 나고요, 어두컴컴하며, 벌레가 득실거려 괴물이라도 튀어나올 듯하죠. 그 곳이 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악취를 어떻게 견디나요? Not in my back yard!!"

 

설마, 당신이 생각하는 하수처리시설인가? 하수도 시스템을 못 갖춘 과거의 길거리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수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함에도 막연히 더러운 물을 모아 처리하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하수처리시설은 혐오시설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지난 2007년 1월 영국의 의학 전문지 「브리티시메디컬 저널」에서 인류의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현대 의학계의 성과를 투표한 결과, "하수도와 깨끗한 물"이 1위를 차지, 항생제와 백신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현대 의학계의 성과가 하수도라니, 이해할 수 없는 분들도 있으리라. 콜레라, 장티푸스 등 물에 의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매우 컸지만 하수도 정비를 통해 수인성전염병을 막을 수 있었고,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들춰내지 않더라도 간혹 침수되어 하수처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지역에서 수인성전염병이 우려된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수도는 하수를 처리해서 수질오염을 막고 공중위생 향상에 기여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수처리시설이 혐오시설로 인식된 것은 처리과정에서 나오는 악취나 기기설비의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하수처리시설이 요즘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과거 하수처리시설이 깨끗한 물 만들기라는 본연의 임무에만 주력 해왔다면 현재는 인근 주민들이 언제든 들러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수처리시설에 워터파크, 레스피아(레저(leisure)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 등의 이름을 붙여,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잔디구장, 분수대, 생태공원 등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는 곳이 많다. 또한 하수처리시설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게 했던 일등 공신인 악취문제는 지속적인 악취검사, 탈취설비 구축, 방풍림 조성 등을 통해 해결해나가고 있다.

 

하수처리시설의 새 옷 갈아입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적 이슈인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제시한 신 국가발전 패러다임 '저탄소 녹색성장'에 하수처리시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9년 전라북도 내 40개의 하수처리시설에서는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등 녹색 공간 마련을 통해 "저탄소"에 기여했다. 또한 도내 몇몇 하수처리시설에서는 태양광 및 열병합 발전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이용하고 있으며, 신재생에너지 설치사업을 계획해 "녹색성장"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수처리 시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절약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기존에 상수도를 이용하던 것을 하수를 처리한 물을 재이용하는 등 도내 11개 시설에서 하수처리과정 개선을 통한 에너지 절약을 꾀하고 있고 적정 실내온도 유지, 종이컵 사용 줄이기 등과 같은 생활 속 이산화탄소 저감운동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이런 변화로 볼 때 이제 더 이상 하수처리시설을 혐오시설이라고 말할 수 없다. 깨끗한 물이 탄생하는 곳이며 주민들의 쉼터이며 친환경적인 공간이 바로 하수처리시설이다. 막연히 좋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더럽힌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하수처리시설에 관심을 갖고 깨끗한 물 만들기에 우리 모두가 노력할 때, 아름다운 환경, 건강한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근처 하수처리시설에 한번즘 소풍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한상준(전주지방환경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