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이조 중엽 시절에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 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였다. (…) 열 달이 차자 갑자기 그윽한 향기가 방안에 감돌며 문득 한 옥녀를 낳았으니, 딸아이의 이름을 콩쥐라 지어 애지중지 길렀다.'
최고본(最古本)으로 알려진 대창서원판 「대서두서전(大鼠豆鼠傳:콩쥐팥쥐전)」(1919) 시작 부분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로 시작되는 꿈결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의 배경을 곧 찾을 수 있도록 '전주 서문 밖 30리'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한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전래동화 「콩쥐팥쥐」. 한국적인 정취를 잘 드러내고 있는 제목부터 이야기 속 지역적인 배경과 사건 등을 통해 막연하게 전라도로 지목된 콩쥐팥쥐의 배경은, 2005년 「콩쥐팥쥐 배경마을 고증 타당성 검토 학술연구용역」(발주 완주군)을 완료한 우석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이라는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됐다.
「콩쥐팥쥐」의 배경마을 찾기는 이야기의 첫머리에 언급된 '전주 서문 밖 30리'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지역성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이곳은 전주의 옛 서문(다가파출소와 서문교회 사이)에서 정서향(正西向)에 위치한 지점. 대동여지도와 1872년 규장각 지도를 근거로 살피면 앵곡마을을 포함한 완주군 이서면 일대다. 그러나 이야기의 어디에도 '앵곡마을'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지 않기에 당시 연구자들은 이야기 속 지명과 지역 정황, 등장인물의 실존가능성과 지역과의 연관성 등을 중심으로 배경마을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들을 찾아냈다. '콩쥐의 집 근처 상탕·중탕·하탕으로 표현된 개울 또는 저수지가 있는가', '자갈밭·모래밭 등 콩쥐의 집 주변 경작지', '전라감사 부임 순행로인 전라감사 행차로', '콩쥐가 신발을 잃어버린 다리', '콩쥐의 외가인 조씨들의 마을이 인접해 있는가' 등 공간적 배경을 유추해낼 수 있는 자료들과 콩쥐의 아버지(최만춘) 최씨 일가, 어머니(외가) 조씨 일가, 계모 배씨 일가, 김씨 성을 가진 전라감사 등에 주목한 것이다.
콩쥐팥쥐 배경이 앵곡마을과 지근거리인 김제시 금구 둔산마을이라는 주장도 우석대학교 박물관의 용역 결과발표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완주군이 먼저 관광개발의 청사진을 마련, 콩쥐팥쥐 캐릭터를 개발했고 상표등록까지 마쳐 완주와 김제의 배경지 논란은 완주군이 앞서고, 김제시가 뒤를 받쳐주는 형국이 되고 있다.
사실 콩쥐팥쥐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분포한다. 설화로서의 콩쥐팥쥐는 같은 제목의 이야기가 경기와 경남에서도 찾아지고, 제주는 '콩쟁이와 팥쟁이', 경북은 '콩례와 팥례', 평북은 '콩중이 팥중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전하는 '콩조시 팥조시' 이야기 역시 의붓어미의 구박과 의붓어미 딸의 악행, 잃어버린 신발 등을 모티브로, 계모에게 핍박받던 콩조시가 나랏님과 혼인해 잘 살았다는 '콩쥐팥쥐' 원형 중 하나다.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도 그 유형이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 서문 밖 30리'라는 구체적인 지역적 배경은 전라북도와 완주군 이서면이 '콩쥐팥쥐의 판권'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독립된 힘을 실어 주었다.
완주군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년 동안 앵곡마을 일대에 32만1318㎡(약 9만7000평) 규모의 콩쥐팥쥐 동화마을을 조성키로 하고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앵곡마을과 콩쥐팥쥐의 관계가 세간에 오르내린 것도 이때부터다. 앵곡마을을 '콩쥐팥쥐 동화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펼치면서 콩쥐팥쥐를 활용한 상표를 대거 출원하기도 했다. 설화 속 콩쥐와 팥쥐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콩쥐팥쥐 상표'와 '착한 아이'의 대명사인 콩쥐 캐릭터, 온갖 방법으로 콩쥐를 구박해 '국민 미움둥이'가 된 계모 배씨의 캐릭터, 항아리의 구멍을 막아줘 곤경에 빠진 콩쥐를 구해주는 개구리(두꺼비) 캐릭터도 상표로 출원했다. 하지만 '완주군의 콩쥐팥쥐'는 여전히 '유명 브랜드'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다. 완주군은 2006년 민선4기가 출범하면서 이 사업을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보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배경지 논쟁과 '순수 국비보조 예산지원에 대한 근거가 미약해 사업비 확보가 불투명'하고, '사업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행히 올해 초 완주군이 주최한 '완주군 전래동화 공모전'이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콩쥐와 팥쥐는 희망을 다시 찾게 되었다. '콩쥐팥쥐'와 '나뭇꾼과 선녀' 등 완주군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동화다시쓰기, 캐릭터디자인 등을 공모한 이 대회는 지역의 스토리텔링 자원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의미 있는 시도다. 콩쥐팥쥐 이야기는 완주와 전북의 대표적인 브랜드이고, 브랜드는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브랜드가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 아래 육성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콩쥐팥쥐를 함평군의 '나비'나 무주의 '반딧불'처럼 완주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브랜드로 삼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애초에 계획했던 콩쥐팥쥐를 활용한 동화마을 조성사업 등은 서둘러야 할 일이다.
전래동화 속 마을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전래동화는 말 그대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소망이 깃들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권선징악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주인공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내용이며, 이야기에 담긴 삶의 철학과 가치는 우리 겨레를 비롯한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들이 전승된다. 각박해질수록 전래동화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곡성의 심청마을과 장성의 홍길동 마을, 남원의 흥부마을, 단양의 온달마을, 양평의 소나기마을 등 설화나 동화, 소설 등을 테마로 조성한 마을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콩쥐팥쥐」는 완주와 전북이 이야기의 발상지이자 배경지였다는 의미뿐 아니라, 전북이 문화적 전통이 살아있는 고전문학의 중심지였으며, 완판본 출판문화의 고장임을 다시 입증시켜 주는 의미 있는 결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기우 문화전문객원기자(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