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국보 제11호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국보 중의 국보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백제 문화 연구의 새 지평을 열게 됐으며, 익산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었던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추진위원회 구성으로 강력한 추진주체는 만들어졌지만, 막대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내년 태조 어진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을 위한 위원회도 구성됐지만,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지적이다.
▲ 미륵사지석탑서 사리장엄 출토
미륵사 창건 배경 및 발원자, 석탑 건립 시기를 확인해 준 700여점의 미륵사 사리장엄 발견은 무령왕릉 발굴과 능산리 금동대향로 조사 이래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석탑 조성 내력을 적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를 통해 미륵사가 백제 제30대 무왕 시절인 서기 639년에 그 왕후가 창건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왕후에 대한 해석은 분분해 백제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로 대표됐던 백제와 신라간 문화교류설은 흔들리게 됐다. 이에 대한 논란은 역사학계는 물론, 국문학계까지 확산돼 전국에서 학술대회 및 세미나 등이 활발하게 개최됐다.
또 사리장엄 전북 봉안 추진과 함께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국립박물관 승격,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왕궁리 유적, 무왕릉인 쌍릉, 입점리 고분, 웅포리 고분 등 익산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등이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989년부터 발굴조사만 해오다가 올해 본격적인 정비작업에 들어간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는 7세기 백제 궁궐의 후원(後苑)과 수로가 발견되기도 했다.
▲ 「여지도서」 등 고전 번역 부활
조선후기 인문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번역작업은 8년여의 노력끝에 마무리됐다.
1757년부터 1765년 사이에 편찬된 「여지도서」는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등 조선시대 대표적 정사(正史)에 버금가는 조선후기 인문지리지로 평가받아왔다. 본문만 200자 원고지 6만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2002년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공모한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분야에 선정됐으며 총 16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변주승 전주대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다.
일본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전주부사(全州府史)」 번역도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전주역사박물관은 정조대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호남읍지」 전라도·전주부편을 영인해 지역학 전문학술지인 「전주학연구」 2집에 수록했다.
▲ 전북 정체성 담긴 전시 이어져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맞아 전북박물관협의회는 전북의 국보와 보물을 모아 '전북의 명품, 시간의 경계를 넘어'를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는 국보 제123호 왕궁리석탑 출토 금동불과 사리갖춤, 국보 제232호 의안백 이화 개국공신녹권, 보물 제931호 태조 어진 등이 소개됐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전북, 전북사람들' '전북 명품의 맥' 등 그 어느해 보다 지역밀착형 전시를 선보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조명한 '마한, 숨쉬는 기록'도 기획했는데, 세계적인 고고학자 사라 넬슨이 방한해 이 전시를 관람했다. 세계동아시아고고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라 넬슨은 우리나라 최초의 제사 유적지인 부안 죽막동 제사 유적지에도 들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했다.
마한과 관련해서는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백제시대 마한 분구묘(墳丘墓)에서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것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의 금동신발 1켤레가 발굴되기도 했다. 마한식 전통 묘제에서 백제, 중국, 일본 등 4국의 유물이 모두 확인됐으며, 주변이 고인돌 유적지 인근이라 고창이 선사는 물론, 마한 백제시대 중심지였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 문화재 보호의식 위험수위
도내 국보 및 보물 목조문화재가 대부분 화재경보기나 CCTV를 확보하지 않고 있으며 화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화재에 무방비 상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금산사 경내에서 쓰레기를 태우거나 객사나 경기전에서 시민이나 작업 인부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등이 목격되면서 문화재 보호 의식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