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주변도 없고, 그냥 호랭이가 좋아 그린 것 밖에 없습니다."
'호랑이 화가'로 알려진 동양화가 정광영씨(65)가 경인년(庚寅年)을 맞아 호랑이 한 마리를 내놓았다. 늠름한 자태와 형형한 눈빛. 마치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호랑이를 그린 지 벌써 40여 년 째다.
그가 '호랑이 삼매경'에 빠진 것은 어린 시절 서울에 있는 외가에 놀러갔다가 창경원에서 호랑이를 맞닥뜨리면서부터.
"눈에 확 띄데요. 어렸을 때부터 외골수라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근데 호랭이란 놈은 늘 당당하잖아요. 포효할 때의 그 기백이 좋습디다."
털끝 하나 하나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까다로움, 그 특유의 생태적 민첩성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한때 호랑이의 용맹함을 강조한 나머지 공포와 두려움의 호랑이만을 그린 적도 있었지만, 안방에 걸어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모습을 위해 세필 위주의 정교한 표현을 살렸다.
"처음엔 털 한 올까지 살려 그렸지만 어느 순간 그림이 단순해지데요. 86년 호랭이 한 점을 전북일보에 냈는데, 너무 아쉬운 게 많아 다시 그려봤습니다."
호랑이를 그릴 때 가장 어려운 작업은 눈을 그리는 일이다. 호랑이 특유의 용맹과 맹수의 제왕다운 품위가 결여되면, 웃음거리가 되기 쉬워서다.
"눈이 모든 걸 지배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한 광채가 나올 것 같은 눈을 그리는 게 가장 어렵죠. 그것 때문에 수십 번 다시 그립니다."
전주 출생인 그는 6·25 때 부친 정진희(전 한민당 입법의원 및 전북일보 사장)씨를 잃었다. 간신히 입학한 전주대 미술교육과 마저도 중도 포기, 정식적으로 그림을 배울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지인들 사이에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으로 통했다. 호랑이가 숭배의 대상에서 신성성이 쇠퇴하자 '팔리는 그림'엔 한계가 있어 서울 TBC 동양방송, 전북일보 등에 근무하기도 했다. 16년 전 아내 마저 암으로 훌쩍 떠나 보내자, 그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예술은 자신만의 혼으로 깨워가는 것이라는 심원 조중현 선생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붓 한 획으로도 영혼이 담긴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경인년을 맞아 그는 생애 첫 전시에 대한 욕심을 냈다. 한반도 백두대간을 등뼈로 삼고, 갈래갈래 뻗은 산맥을 줄무늬로 형상화한 백호를 그리기 위해 요즘 작업 구상 중. 88 올림픽 때 호돌이가 마스코트가 되면서 호랑이에 대한 관심은 '반짝'하고 있었지만, 이젠 호랑이가 해학과 질타, 비유, 은유 등으로 다양하게 상징화돼가는 것 같다며 나이가 들면서 온순하고 친근한 이미지의 호랑이도 그리고 싶어진다고 했다.
"호랭이가 사람을 해치는 이미지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소나무나 갈대를 배경으로 재미있고 친근하게 그려보고도 싶어요."
이어 그는 "한반도가 호랭이 모양인 것을 보면 조상들이 호랭이를 영물로 여겼던 게 다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다"며 "올 한해 전라북도의 광활한 벌판에 호랭이가 너울치듯 뛰어다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