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지기 위해서라면 얼굴에 칼(?)을 대는 것도 예사인 요즘, 화장도 안 하는 '간 큰' 20대 여성이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전북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곽화정씨(28). 엄밀히 따지면 곽씨가 화장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행사나 특별한 자리에 갈 때는 예외다.
곽씨는 화학성분이 들어간 샴푸 대신 천연샴푸를 쓰고, 미용실에는 머리를 자를 때 말고는 거의 가지 않는다. "남자와 달라 머리는 기르면 그만"이다. 독한 화학약품을 쓰는 파마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가끔 주위에서 '파마 좀 해봐라', '20대인데 외모에도 신경을 써라'라고 참견하지만, 곽씨는 "예쁘게 꾸미는 것은 별로 부럽지 않다. 오히려 신념을 가지고 살거나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더 부럽다"며 짐짓 딴청이다.
대학 때까지 여느 여대생처럼 화장도 하고, 환경에 대해서는 신문이나 TV 등을 통해 어렴풋이 아는 게 전부였던 곽씨가 현재 받는 활동비보다 2배 월급을 주던 직장을 박차고 나온 까닭은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물질적인 것, 성공이라 부르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생명이 처음 태어난 바다가 그러한 생명 중 한 종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기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는 비록 나쁜 방향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계속 존재하겠지만, 정작 위험에 빠지는 쪽은 생명 자체이다.'
지난 2007년 곽씨에게 "이렇게도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하고 큰 충격을 안겼던 미국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 서문에 나오는 글귀다. 곽씨는 이 책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EBS에서 방영한, 역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고 진로 변경을 굳혔다고 했다. '침묵의 봄'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봄은 왔지만, 새들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봄을 상징한다.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는 곽씨는 지난해 11월 '임실 납자루 구출 작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납자루는 우리나라에서도 섬진강 수계 임실 오원천에서만 서식하는 '멸종 위기 2급 어류'로 당시 환경운동연합이 나서서 보 개축 공사로 고사 위기에 놓였던 납자루와 이것들이 알을 낳아 놓은 민물조개 세 종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곽씨는 "전주지방환경청과 임실군이 납자루뿐 아니라 다른 생물에도 영향이 덜 가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며 "초등학생으로 꾸려진 '푸르미환경탐사대'도 같이 참여했는데, 아이들 스스로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뒤 버스로 매일 출·퇴근한다는 곽씨의 최근 화두는 '기후 변화'.
"기후 변화는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쉽게 체념하는 문제이기도 하죠. 그러나 상황은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지구를 한 사람이 단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한 가지 습관을 실천할 때마다 지구에 사는 수십억, 수천억 생물 중 하나씩 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요?"
곽씨는 "지구를 구한다고 하면 허무맹랑할 수 있지만, 이런 즐거운 상상이 퍼지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서태지가 말한 '네가 나약해질수록 불행은 너를 사랑한다'가 좌우명이라는 곽씨는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스스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