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살린 사람들] ②송화양조사 조영귀대표

"전북 와서 400년 名酒 맛보라" 희소성 지켜…1994년 민속주 명인 1호

완주군 구이면 송화양조사의 벽암 조영귀(61) 대표가 송화백일주를 담아놓은 항아리를 열어 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정헌규(desk@jjan.kr)

"진묵대사님이 수왕사를 정유재란 때 중건하고 송화백일주와 송죽오곡주를 만들었습니다. 송화백일주의 역사는 최소한 410년 이상 입니다"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송화양조사 벽암 조영귀 대표(61)는 모악산 수왕사 주지스님이다.

 

물 수(水), 임금 왕(王)자를 쓰는 수왕사(水王寺)의 물은 옛날부터 좋은 물로 유명했다. 약수의 첫번째 조건인 서출동요수(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며, 석간수(石間水)이다.

 

수왕사의 진묵영당 옆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은 35년전 타임지에도 그 효험이 소개된 바 있다. 봄·여름에 물에서 더덕향이 나고 갓난아기의 피부병까지 낫게 했다는 것이다.

 

신경통·위장병에까지 효험이 있다는 이 석간수는 '수왕사약지(水王寺略誌)'에 옛날 선녀가 마시던 물로 나온다. 또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전 신라 진덕여왕 때 도반승인 영희(靈熙)와 영조(靈照)가 수도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이 약수로 곡차를 빚어 마셨다고도 한다.

 

이처럼 좋은 물로 만든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와 송죽오곡주(松竹五穀酒)는 수왕사의 전통주로서 도로가 없어 40분을 올라가야 하는 해발 800m의 높은 절에서 승려들이 고산병과 채식에 의한 영양결핍·냉병을 막기 위해 즐겨 마셨다고 전해져 온다.

 

역대 수왕사 주지스님에 의해 송화백일주 등의 비법이 계승되어졌고 1990년 송화양조사가 세워졌으며 1994년 8월 12대 주지스님 벽암(碧岩)이 민속주 명인 제1호로 지정됐다. 1998년에는 민속주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벽암은 12세에 김제 흥복사로 출가해 15세때부터 수왕사에서 송화백일주·송죽오곡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송화백일주는 수왕사 주지들에게만 비전되어 온 덕분에 일제 강점 문화말살기와 밀주 단속이 심했던 때에도 맥이 끓기지 않았다.

 

조 대표는 매년 4월 소나무 꽃이 노란 색깔을 띌 때 1년동안 쓸 송황(송화분) 물량을 채취한다. 소나무 꽃이 피는 시기는 딱 일주일 뿐이므로 남해안에서부터 중부까지 소나무 꽃을 따라 올라가며 4월 한달 동안 송황 채취에 매달린다. 등소평의 장수 비결이 화분을 먹는 것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송황은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송화백일주를 만드는 방법은 우선 정선된 재료(찹쌀·백미·솔잎·한약재)와 수왕사의 깨끗한 물을 혼합하여 밀봉 상태로 발효시킨다. 이 발효가 끝나면 대략 16% 정도의 청주가 나오는데 이 것을 증류기로 끓여 약 40% 정도의 소주를 받아낸다.

 

이후 부재료(산수유·오미자·구기자 등)와 혼합하여 100일 동안의 저온 숙성을 거쳐 여과와 재성을 한 후 38%의 송화백일주로 완성된다.

 

송죽오곡주는 송화백일주와 같은 재료를 쓰지만 증류를 하기 전까지의 술로서 16%의 청주 상태로 제품이 완성된다. 전통적인 발효방법에 의해 누룩과 수왕산 약수, 정선된 재료를 혼합해 23℃ 온돌방에서 7일간 재웠다가 8일째 땅에 묻어 저온 발효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단 맛·신 맛·떫은 맛·매운 맛·쓴 맛 등의 오묘한 오향 오미를 느낄 수 있다.

 

조 대표가 술을 만들면서 가장 정성을 들이는 부분은 '주모(酒母)'를 잡는 일이다. 주모를 잡는다는 것은 쌀을 씻어 시루에 쪄서 고두밥을 만든 후 완전히 식혀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때 2시간 이내에 발효가 이뤄져야 술 맛이 제대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공기속의 세균 침투를 막기 위해 항아리를 소독하는데 조 대표는 '독을 거꾸로 놓고 안팎으로 짚을 태워 세균을 박멸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이는 주모잡기와 더불어 조 대표가 송화백일주·송죽오곡주를 명주의 반열에 올려놓은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송화양조의 외형을 키우지 않았다. 대량 생산이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희소성을 유지, 전북에 와서 송화백일주·송죽오곡주를 맛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는 경제적으로 난관을 겪기도 했으나 송화백일주 등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왔다.

 

민속주 명인인 그의 비법은 10여년전부터 조의주씨(36)와 조민수씨(34)에게 전해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 대표는 "민속주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빚어낸 술"이라면서 "스님으로서 이들 약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