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장기전 모드' 전환…법리공방 지속

사법갈등 '잠복기' 돌입…휘발성은 여전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PD수첩 제작진에 대한무죄 판결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법원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온 검찰이 '장기전모드'로 전환했다.

 

법원에 대한 정면대응을 가급적 자제하는 동시에 무리한 실력행사에 나선 보수단체들에 대한 신속한 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쌍방분쟁의 당사자에서 심판관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그러나 곪을대로 곪은 법원과의 갈등과 관련해선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앞으로도 사법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과 민감한 시국사건 판결이 잇따라 예고도 있어 검찰은 법원과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면서 불안한 동거 관계를 유지해 나갈 전망이다.

 

22일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따르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전날 오후 법원 판결과관련해 일부 보수단체들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데 대해 "흔들림 없이 법질서 확립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매진하라"며 복무기강 확립을 지시했다.

 

이에 대검 공안부는 관할 검찰청에 불법ㆍ폭력 시위나 행위에 철저한 수사로 엄중하게 대처하라는 지침을 하달했고, 경찰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에 계란을투척한 사건과 대법원 앞 사법부 규탄 집회 시위자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법원과 날선 공방을 벌여온 검찰이 대법원장과 판사들을 비판하는 보수단체들의과격시위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나선 것은, 사법갈등이 자칫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는사회혼란으로 발전할 수 있어 이를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을 내린 데 따른것이다.

 

또한 사법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사회적 긴장관계가심화될 경우 검찰이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계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법원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던 검찰이 태도 변화를 보이면서 악화일로였던 사법갈등 사태는 일단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쉽게 봉합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전날 전국 검사가 참여하는 첫 화상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법원과의 갈등 등 현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검찰은 의연하고 당당하게 나갔으면 한다"며 전열을 재정비할 것을 주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 총장은 "지난주 이번주 복잡하지만 바르게 반듯하게 가자. 올해 기운이 검찰쪽에 있다"며 법원과의 갈등국면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그는 회의를 마친 뒤 간부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화두를 던짐으로써 진중하고 의연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해 나갈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앞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20일 출근길에 정치권의 사법개혁 논의와 자신의책임론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사법부의 독립을 굳건히 지키겠다"며 외압에 굴복하지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는 불공정 논란을 빚고 있는 판결이나 사법개혁 논란에 대해 사법권 독립을훼손할 수 있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타협하지 않겠다는 원칙론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이번 사태가 장기화로 갈 수 밖에 없음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동안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대법원은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대한 계란투척과 관련해 "각자 처한 입장과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비이성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결국 법조계와 정치권 공방을 넘어 사회적 이념대입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는사법갈등 사태는 당분간 '불안정한 잠복기' 속에서 장기화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이지만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어 휘발성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