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조아지 여사에게 배워
"숙황장(熟黃醬)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잡수시던 수라상의 음식 조리에 쓰이던 간장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유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007년 5월 장류 부문에서 국내 첫 전통식품 명인에 지정된 김병룡 전주 전통장 개발연구소장(71)은 간장·된장·고추장과 술 등 발효 관련 전통식품 연구 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숙황장은 사대부 집안이었던 김 명인의 가문에 400여년전부터 내려온 비법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수로왕의 62세손 김천수 어르신(김 명인의 14대 조부)을 효시로, 63세손 김위 어르신으로부터 숙황장의 제조방법이 전수되고 있다. 조선 선조~광해군~인조때 '송상군' 별호를 받았던 김위 어르신은 당시 장고마마에게 숙황장을 배웠다.
장고마마는 후계자인 애기마마와 함께 두 사람만, 철저한 보안속에 관리되던 임금님의 장독대를 출입할 수 있었던 신분이었다.
이렇게 집안 대대로 전해져온 숙황장은 김 명인의 어머니 조아지여사(98년 작고)에게 이어졌고 8남매중 넷째인 김병룡 명인이 '온전히' 옛날 방식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 연구모임 30여년동안 지속
1939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에에서 태어난 김 명인은 어려서부터 며칠에 한 번씩 제사를 치르는 것을 보았다. 김 명인의 집은 2~3일 후 또다른 제사가 있어도 음식을 새로 만들고 술을 새로 빚었다. 그만큼 음식에 정성과 조예가 있었다.
김 명인은 1957년 고교 졸업후 타고난 인연인지 보배소주에 입사해 일하다 '학문적 뒷받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1963년 전북대 농화학과에 들어가 발효공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후 다시 보배소주로 들어가 생산과장을 지내다 1970년 교사로 변신했다. 장계농고, 김제농공고, 부안농림고, 전주농림고 등 식품관련학과가 있는 학교에서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며 숙황장과 전통주를 끊임없이 연구했고 2000년 퇴직했다.
1982년에는 '간장 덧 숙성과정중 유기산 생성의 변화에 대하여 -휘발성 유기산을 중심으로'라는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이를 비롯 김 명인의 논문 다수가 식품학회지에 등재됐고 간장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 명인이 중국의 서적인 '제민요술', 우리 서적인 '증보산림경제'등의 연구모임을 30여년간 지속한 것이 바탕이 됐다.
▲ 연구소 발효실 등 첨단과학 시설
2004년 6월 30일 전주시 다가동 전주기전대학 기숙사 지하 2층에 전주전통장개발연구소를 열고 소장을 맡았다. 연구소 이름에 '개발'을 넣은 것은 조선왕조의 간장을 세계인의 입맛에 맞도록 글로벌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지하 2층인 이 곳의 설계와 시설은 김 명인의 작품이다. 좋은 간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더워도 안되고 추워도 안되고 장의 깊은 맛은 일정한 온도에서 빚어지기 때문에, 연구소의 발효실·숙성실·제국실·원료보관실 등은 첨단과학으로 무장돼 있다.
전주기상대에서 정확한 자료를 받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하 2층의 기온을 일년 내내 지상의 온도와 일치시키고 있다. 이같은 시설을 자동화하느라 교육부에서 6억원을 지원받고 6억원을 자부담하는 등 12억이 투입됐다.
이 곳 연구소에서는 메주를 만드는 과정까지 담당하고 '제장'은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 동락원에서 이뤄진다.
▲ 백화점 납품…장남이 가업 이어
김 명인은 된장·고추장도 남원 김종옥씨의 인월요 항아리에 담는다. 국내 유명한 도자요를 모두 다녀본 결과 인월요 제품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현대백화점은 VIP인 Jasmine고객에게 품위와 건강을 전하기 위해 사은품으로 숙황장 700개를 선물했다. 현대백화점이 숙황장의 품질을 인정한 것이며 올해는 신세계백화점에서도 숙황장을 판매할 예정이다.
김 명인의 비법과 가업은 장남 김필준씨(37)에게 이어지고 있다.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한 김씨는 발효공학이 학문적으로 보완되고 이론과 실제를 겸비해야 한다는 김 명인의 지론에 따라 앞으로 발효공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조선시대 임금님들의 음식 맛을 내기 위해 쓰이던 간장, 그 생산지가 전북인 것이 자랑스러운, 희귀성과 역사·가치 등 종합적인 면에서 세계적 명품으로 마땅한 숙황장이 청와대에는 안 들어가냐고 묻자 "아직 모르시는지…"라며 김 명인은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