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 청춘] 다큐멘터리 드로잉 작가 조동환씨

"눌러 쓴 연필자국으로 노년의 기쁨 알게됐죠"…퇴직 후 드로잉 시작 600여점 그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조동환씨의 모습 (desk@jjan.kr)

"다시금 연필을 들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막내아들이 없었다면 제 이름 석 자로 된 작품집 하나 남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을 거에요. 아들에게 아주 고마워요."

 

40여 년 동안 미술교사로 교직에 몸담으며 후학을 양성하다 정년퇴직 후 작가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며, 인생의 2막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가 있다. 올해 일흔다섯 살의 조동환씨가 그 주인공.

 

고령의 나이에도 젊은 작가들에게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는 조씨를 만나기 위해 전주 금암동 자택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지나 2층짜리 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조씨가 빚은 것으로 보이는 조각작품이 계단 중간마다 놓여 있다.

 

연필을 이용한 다큐멘터리 드로잉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desk@jjan.kr)

집안으로 들어가자 종이 상자 여러 개가 거실 한쪽에 쌓여 있다. "전시회에 보냈다가 돌아온 작품인데 아직 정리를 못 했어요. 천천히 정리해야죠." 쌓여 있는 상자를 살펴보는 기자를 향해 조씨가 건넨 말이다.

 

인터뷰를 위해 거실에 있는 앉은뱅이 책상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책상 위에는 스케치북과 연필이 놓여있다. 스케치북에는 기자가 찾아오기 전까지 조씨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드로잉 작품이 미완성 된 채 놓여있다.

 

"옛날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제가 지금 하는 작품 활동이 다큐멘터리 드로잉이거든요." 조씨의 작품에는 일반적인 드로잉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열심히 그린 그림의 남은 공간은 조씨가 손수 연필로 꾹꾹 눌러쓴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스케치북에 열심히 연필을 놀리던 조씨. 조씨와 다큐멘터리 드로잉의 만남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 공부 못한다고 야단만 치는 아버지가 무서워 말도 잘 하지 못하던 막내아들 해준씨와 단절됐던 대화가 시작되면서부터.

 

"1999년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뒤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산악회에 가입해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기에 바빴죠. 그러던 중 2002년 막내아들 녀석이 함께 작품 활동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평소 아버지와 대화가 적었던 막내아들이지만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미술가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아들 해준씨.

 

해준씨는 한국종합예술학교에 다니던 중 막혔던 아버지와 대화의 물꼬를 트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지난 세월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게 됐다. 그리고 이런 사연들을 글과 그림이 있는 다큐멘터리 드로잉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아들 녀석 제안을 받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연필을 들었습니다. 아들의 제안이 없었다면 다시 그림을 그렸을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노년에 너무나도 즐거운 삶을 살고 있죠."

 

교직을 떠난 지 수년 만에 다시 연필을 손에 쥔 조씨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2002년 서울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열린 '신세대 흐름'전에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새롭게 출발했다.

 

조씨는 "아들 제안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제가 늘그막에 시작한 작품활동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첫 전시회에 참석했을 때일 것입니다. 17장을 출품했는데 그때의 벅차오르는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난 2008년 그동안 열심히 스케치북에 그려온 드로잉 작품을 한데 엮어 아들 해준씨와 함께 '놀라운 아버지 1937~1974'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조씨가 아들과 함께 준비해온 작품을 책으로까지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활동 중간마다 지속적으로 이어진 전시회 덕분이다. 조씨는 그동안 아들 해준씨와 함께 국내외 11번의 전시회에 초대받아 자신의 작품을 일반에 공개했다.

 

특히 지난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 때는 행사 기념작품으로 당당히 선정돼 비엔날레관 상설홍보관에 자신의 작품이 영구보존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현재 조씨는 2008년 책 발간 당시 포함하지 못한 1974년 이후의 삶을 스케치북에 그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언젠가는 꼭 다시 책으로 엮어낼 생각이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집 거실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조씨는 "그림을 다시 그려보라는 아들의 권유 때문에 노년의 삶에 즐거움도 찾고 건강도 찾게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제가 연필을 다시 잡지 않았다면 다른 노인들처럼 그냥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며 노년을 즐겁게 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예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