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속도와 정치:공간의 정치학에서 시간의 정치학으로

(42)<폴 비릴리오 지음, 이재원 옮김, 그린비, 2004>'빨리빨리'의 문화정치학

프랑스 철학자이자 건축가인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의 「속도와 정치 : 공간의 정치학에서 시간의 정치학으로」(이재원 옮김, 그린비, 2004)는 난해한 책이다. 속도, 전쟁, 기술이라는 3대 화두에 집착하는 그는 경제·사회적 힘이 아니라 전쟁과 속도가 인간사회와 현대문명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고 군인으로 알제리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에 대한 엄청난 충격을 받아 전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전쟁은 저의 대학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나왔지요."라고 말한다. 다음 5가지 주장을 음미해보자.

 

(1) "속도는 권력 그 자체이다."

 

(2) "인구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은 우월하고 지배적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들이 훨씬 더 빠르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략) 속도는 서구의 희망이다."

 

(3) "속도는 사냥꾼이나 전사에게 언제나 우월함과 특권을 가져다 줬다. 질주와 추적은 모든 전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역사상의 모든 사회에서 속도의 위계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지를 취득하고 영토를 지킨다는 것은 그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곳을 재빨리 흝어볼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오늘날에는 습격이 초음속의 속도로 이뤄져 경계경보를 울리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됐기 때문에 탐지, 확인, 응수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기습공격을 받을 경우, 최고권력자는 요격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방어체계의 가장 낮은 단계를 서둘러 승인하는 식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신의 권위를 포기해야 할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5) "민주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나누는 것이다. 무엇을 나누는가? 의사결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사회에서는 의사결정이 놀랄 만큼 짧은 시간의 한계 속에서 이뤄진다. 운송수단과 전송수단의 혁명이 민주적인 통제를 넘어서는 속도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적 속도 대신에 절대적 속도가 사용됨으로써 민주주의의 본질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난해하긴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자꾸 한국이 떠오른다. 한국은 세계에서 독보적인 '빨리빨리 공화국'이 아닌가. 비릴리오는 전쟁 중심으로 '속도의 정치경제학'을 말하지만, 전쟁적 가치의 확산으로 삶이 전쟁처럼 수행되고 영위되는 '속도의 문화정치학'도 말해야 할 것 아닌가. 이 후자를 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빨리빨리'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개화기에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들은 한결같이 한국인들의 '게으름'과 '느림'을 지적하고 있다. 왜 당시 조선인들은 그렇게 느려 터졌던 걸까? 1894년 1월에서 1897년 3월까지 조선을 네 번이나 방문하였던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shop: 1831-1904)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숍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단지 두 계급,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며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4/5인, 문자 그대로의 '하층민'인 평민계급이 그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배경식은 "그렇지만 가난이 항상 농민들의 삶에 질곡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며 "'가난'은 탐욕스러운 관리들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막 구실을 하였다. 이런 모습이 낯선 이방인의 눈에 '실질적인 안락함'으로 비쳐질 정도로 조선 농민들은 가난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낙천적인 면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가난이 착취의 보호막 구실을 해주는 상황에서 부지런하고 빨라야 할 이유는 없었다. 흥미로운 건 가난과 학정과 수탈을 못 이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해외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빨랐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빨리빨리'가 전 국민의 행동강령으로 자리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과 60년대부터 군사정권에 의해 추진된 군사작전식 개발독재다. 이제 '빨리빨리'에 관한 한 이 지구상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는 없다. 지난 2006년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뽑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베스트 10'을 보자.

 

1. 자판기 커피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 2.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와 추격전을 벌인다. 3.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지퍼를 먼저 내린다. 4. 삽겹살이 익기 전에 먼저 먹는다. 5.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을 누른다. 6. 3분 컵라면을 3분이 되기 전에 뚜껑을 열어 먹는다. 7. 영화관에서 스크롤이 올라가기 전에 나간다. 8.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동시에 양치질을 한다. 9.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닫아버린다. 10. 편의점 등에서 음료수를 미리 마신 뒤에 계산한다.

 

외국인들은 배달을 잘 안시키는가보다. '빨리빨리'의 정수라 할 배달 문화가 빠졌으니 말이다. 한국은 독보적인 '배달(配達) 민족'의 나라가 아닌가. 다음 기사 내용이 재미있다.

 

"음식을 주문한 장소가 운동회가 한창인 초등학교 운동장이건 붐비는 지하철 역사(驛舍) 구석이건 상관없다.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서든 배달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아침밥, 과일 간식, 각종 선물은 물론 운동기구, 골프채, 심지어 놀이터까지 전화 한 통이면 배송해주는 '배달(配達) 민족'의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뭐든지 '빨리빨리' 처리해주길 바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에 미국식 서비스 정신이 결합해 생겨난 이 배달문화는 최근엔 해외로 다시 역(逆)수출될 정도로 '한국 특유의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조선일보 2009년9월8일)

 

그간 한국인의 '빨리빨리' 기질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재평가되었고 이젠 예찬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된 느낌이다. '빨리빨리'가 IT 시대의 경쟁력 근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빨리빨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말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이다. 그렇듯 '빨리빨리'엔 명암(明暗)이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명(明) 쪽이 큰 것 같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빨리빨리'가 한국사회의 구조와 작동 메커니즘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탐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걸 연구하면 비릴리오의 '속도의 정치경제학'에 필적하는 '속도의 문화정치학'이 한국을 무대로 탄생할 수 있으리라.

 

한국인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하기보다는 '빨리빨리' 이뤄지는 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건너뛰거나 비교적 사소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걸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말이다. 그래서 책임 규명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으며, '책임윤리'가 자리잡기도 힘들다. 이런 문제를 포함하여 '빨리빨리의 문화정치학'에 관심을 가져보자.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