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못 배운 설움과 한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앞둔 손덕순씨(79)는 4일 진행된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교장 홍성임) 졸업식장에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배움의 가치와 열정을 일깨워준 정든 교정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진안이 고향인 할머니는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전주공고에 진학한 친오빠의 끼니를 챙겨주기 무작정 전주로 상경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라 한글을 못 배우고 일본어만 조금 배웠지요. 집안형편이 어려워져 한글을 배우기도 전에 고등학생인 오빠의 빨래와 밥을 해주기 위해 전주로 왔구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먹고살기 바빠 공부 할 틈이 없었어요."
21살에 결혼 한 뒤 슬하에 효심이 지극한 7남매(아들 6· 딸 1)가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32명의 귀여운 손자손녀들이 있어 마냥 행복하지만, 그녀의 가슴 한켠에는 늘 못 배운 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 오랜 세월 까막눈으로 살아온 그녀는 초등학교 검정시험을 합격하고 6년 전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공부와 인연을 맺었다.
"검정시험을 같이 합격한 친구의 권유로 학교에 입학했어요. '이제 공부를 할 수 있구나'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등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는데 걱정은 기우였어요. 책상에 앉아 칠판을 보고 있을 때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꼈고 쉬는 시간에는 동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국·영·수 과목보다 예체능 과목(음악·체육 등)을 좋아하는 그녀는 소풍,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중학교 3학년까지 소풍이나 수학여행 등을 가는 날이면 반 친구들 전체가 오순도순 모여 밥을 먹을 수 있게 30∼40인분의 밥을 해가지고 갔어요. 맏언니라는 책임감보다 각기 사연을 갖고 뒤늦게 배움에 입문한 동기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나눠주고 싶었어요."
오는 3월이면 서해대학 호텔조리영양과 신입생이 되는 할머니는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해보고 싶다. 대학교에 가서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며 "동기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큰 손자가 34살이다. 손자들 같이 생각하고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중학교 과정 36명, 고등학교 과정 38명 등 모두 74명이 때늦은 학사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