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습(大私習)은 소리 광대들이 스스로 익히고 연마함으로써 기예를 향상시킨다는 뜻이다. 광대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하고 청중들 한테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부터 저절로 명창이 됐다. 명창이란 어떤 특정인이나 기관이 칭호를 내린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정된 명예였다.
당대의 내노라하는 광대들은 전주대사습에 참가해 마음껏 기량을 선보이는 것을 최고로 쳤고 그 영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건 전주가 판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판소리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대사습놀이가 열리는 날은 전주부성의 축제일이다. 초청된 광대들은 최고의 기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기호에 맞는 음식을 대접받았고 심지어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문 구멍까지 막아줄 정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전주대습사(史)는 적고 있다. 한마디로 대사습놀이는 조선시대 명창들의 등용문이었던 것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영조(1724∼1776)때 관아의 아전들이 광대를 초청하여 판소리를 듣고 놀던 동짓날 잔치에서 시작됐다. 그 뒤 일제에 의해 중단됐으나 1974년 전주의 뜻있는 인사들이 추진위원회를 결성, 부활시켰다. 1975년 첫 대회에서 오정숙 명창을 배출한 뒤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이일주 최난수 조통달 김일구 등이 모두 대사습을 통해 당대 제일의 명창으로 발돋움했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이런 역사성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전주대사습보존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장원선발과 심사위원 선정의 잡음, 방만한 예산운영 등이 도마에 올랐다. 몇몇 사람이 배타적인 운영을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회를 생중계하던 MBC도 발을 뺐다.
쇠락의 시기에 여성 국악인인 홍성덕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65)이 전주대사습보존회 이사장에 선출됐다. 보존회는 이사장 개인의 것도 아니고 국악인들만의 것도 아니다. 도민들의 것이자 대한민국의 것이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홍 이사장은 눈물을 터뜨렸다. 그의 눈물이 개인적인 한풀이 눈물이어서는 곤란하다. 역사적인 책임의식에서 발로한 눈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선언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대회로 만들기 위해선 전주대사습보존회의 자기객관화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경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