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인해 많은 동식물이 고통 받고 있고, 어떤 종들은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때에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이한 동물이 있다. 바로 지렁이다.
일찌감치 지렁이의 가치를 알고 전파해 '지렁이 전도사'로 불리는 박해영 교사를 만나러 지난 8일 익산 성일고등학교를 찾았다.
박해영 교사의 '지렁이 특강'은 1절(?)부터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박 교사가 지렁이를 만난 것은 몇 년 전 난지도. 그는 엄청나게 많은 인분을 지렁이가 분해하는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분이라고 하면 먼저 냄새가 많이 나잖아요. 그런데 지렁이가 분해한 후 인분은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변토(지렁이가 토양속의 각종 물질을 영양분으로 섭취해서 소화한 후 배설한 것) 위에서 자라는 화초와 갖가지 식물들은 더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놀라웠죠"
그 후 박 교사는 제자의 부모가 경영하는 낚시 미끼용 지렁이 사육농장에 가보았다. 그곳에서 박 교사는 그냥 버리면 환경을 해치는 오염물질밖에 되지 않는 제지공장의 폐기물(종이 슬러지)이 지렁이에 의해 냄새도 없이 분해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지렁이의 위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박 교사는 자택에서 지렁이를 직접 키우고 있다. 벌써 6년째다. 그런데 일반인, 특히 여성들에게 혐오 대상인 지렁이를 집에서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 교사도 처음엔 강력한 벽에 부딪쳤다.
"식구들의 반대요? 왜 없었겠어요. 징그럽다고, 기어 나오면 어떡하느냐고…. 지렁이를 집에서 사육하려면 가족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지렁이에 대한 생태적 가치와 효과에 대해 알려주고 공유하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지렁이가 우리 가족 대화의 중요한 매개체 중 하나가 되었죠."
가정에서 키우는 지렁이가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실질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지렁이는 자기 몸무게의 두 배 이상을 먹어치웁니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를 지렁이가 다 처리해 줄 수는 없지만 상당한 양을 감당해 낼 수는 있습니다. 특히 여름에 가장 골치 아픈 수박껍질은 걱정 없이 완전히 분해해 줍니다."
거기에 지렁이를 키우다 보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의식적으로 실천하게 된다고 하니 이보다 더 생태적인 실천이 또 있을까?
박 교사가 지렁이를 사육한다는 소문을 듣고 벌써 지렁이를 분양해 달라는 지인들이 많다고 한다.
박 교사가 주목하는 지렁이의 가치는 첫째 음식물쓰레기 처리, 둘째 가장 생태적이고 효과적으로 토양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업 형태를 보면 적은 인력으로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많은 농약과 비료를 투입하는 형태입니다. 토양은 비료로 산성화되고 농약의 중금속으로 오염이 되어 지력(땅심)을 상실했죠. 지력을 상실한 땅은 병해충에 더욱 약해집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는 겁니다. 그러나 지렁이가 헤집고 다닌 토양은 다릅니다. 척박한 토양도 지렁이 뱃속을 통해 나오면 땅심 좋은 분변토가 됩니다. 물론 토양 속 산소공급도 원활해져서 살아있는 토양이 됩니다. 지렁이가 땅심을 되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박 교사는 직접 농사도 짓고 있는데 그 농사에 직접 만든 퇴비를 이용하고 있다. 구수한 퇴비냄새와 그 속을 기어 다닐 지렁이를 생각하니 푹신푹신한 밭고랑 흙이 연상되어 금새 행복해진다.
박 교사는 현재 학교에서 환경지킴이 동아리 운영에도 지렁이를 이용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스물다섯 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지렁이를 키우고, 그 분변토로 국화 화분을 키워냈다고 한다.
"지렁이를 이용해 교육적 효과와 환경적 효과를 얻고 있고, 더 중요하게는 지렁이의 아낌없이 주는 미덕까지 배우는 인성 교육적 효과까지 얻고 있습니다."
박 교사는 지렁이를 통한 생태교육 현장에서 활발한 강연활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혼자서 하기는 역부족임을 느낀다고 한다.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지자체나 환경단체들이 함께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렁이를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선생님은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목말라 하고 있었다.
"현재의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지구를 병들게 하는지 몰라서 마구 쓰고, 알고 싶지도 않아 마구 버렸기 때문이라는 거다.
"지구온난화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많죠. 그 많은 방법들 중 지렁이 키우기는 저의 방법이겠죠. 더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 분리배출과 자원 재활용을 더 잘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전주의 옛 도시 완산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지렁이의 아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우연한 인연으로 박 교사의 베란다에서 꼬물거리고 있을 지렁이가 전북을, 나아가 세계를 더 푸르게 덧칠하길 꿈꿔본다.
/고경희(전북 생명의 숲 간사)
※ 다음 릴레이 주자는 한국농어촌공사 전북본부 왕태형 본부장입니다.
※ 이 기사는 본보와 전주의제 21이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인터뷰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