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런 호랭이나 물어갈 놈"이란 욕을 예사로 들으며 자랐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거나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호랑이와 관련된 속담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였다. 그러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야 이 사람아" 하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는 호랑이와 늘 함께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그 산에는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산에는 호랑이가 아주 많이 살고 있어서 '호랑이의 나라'라 하기도 했단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산 속에서나 동네에서 만나는 맹수 중의 맹수가 바로 호랑이였다. 이런 호랑이가 사람이나 가축을 잡아먹기 때문에 퇴치해야 할 포악한 맹수로서 호환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무서운 호랑이를 우리는 노하지 않도록 산을 지키는 산신으로 정성껏 모셨다. 그래서 산신각(山神閣)에는 소나무 밑에 수염이 하얀 산신이 있고 그 옆에 호랑이가 누워있는 그림이 모셔져 있다. 호랑이가 산신으로, 또 산신이 호랑이로 그려지기도 했다.
호랑이에 대한 이런 두려움이 오히려 그 무서움을 역으로 이용해 사람의 편에 서서 삿된 악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존재로 여기게 되기도 했다. 또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야기를 통해 친근함과 정겨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담뱃대를 문 호랑이에게 토끼가 불을 붙여주는 그림에서는 익살스럽고 귀여운 모습으로 해학의 극치를 보기도 했다.
민화에는 일반 서민들의 정서와 심성이 담겨있다. 소박한 익살과 건강한 풍자와 해학이 그 속에 담겨있다. 호랑이가 아무리 사납고 무서운 존재일 지라도, 그걸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유머와 여유를 가지고 새롭게 대하는 시각을 우리 조상들은 지니고 있었다. 그 지혜로움의 시각적 표현이 민화이다.
호랑이 민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주제는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이다. 벽사를 염원하여 호랑이를 삼재 부적으로 그려 문지방 위나 벽에 붙여두기도 했다. 또 지금도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집의 솟을 대문에 호랑이 호(虎)자와 용(龍)자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축삼재(虎逐三災), 용수오복(龍輸五福) 즉 호랑이는 풍(風), 수(水), 화(火) 세 가지 재앙 즉 삼재를 물리쳐 주고, 용은 오복을 가져다준다는 표현에서 앞 글자만 따서 붙여놓은 것이다.
민화 중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 '까치 호랑이'이다.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그려져 쉽게 "까치 호랑이 그림"이라 부르는데, 호랑이와 까치 모두 상서로운 존재이므로 함께 배치함으로써 길상(吉祥)의 의미를 더하게 하는 표현이다.
까치 호랑이 그림은 보통 까치 한두 마리가 소나무에 앉아 아래에 있는 호랑이에게 무슨 얘기인가를 전하고 있는 것 같고, 호랑이는 그 까치를 쳐다보고 있거나 앞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부터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과 함께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호랑이는 문채의 화려함으로 길상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이 둘을 함께 그린 것은 생활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염원하는 뜻을 담은 것이다.
또 까치 호랑이 민화는 본래 새해를 맞이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한 그림이라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희보(喜報)라는 의미의 길상적 표현으로 까치와 표범을 그렸다. 그것은 표범의 한자 발음과 까치의 상징성 때문이다. 중국어에서 표범의 표(豹) 발음이 보답한다는 뜻의 보(報)와 발음이 같다고 한다. 그래서 표범이 보(報)를 뜻하고, 까치는 옛날부터 상서로움과 기쁨을 전해 주어 희작(喜鵲)으로 불렀다. 그래서 한 화면에 표범과 까치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즐거움으로 보답한다.'는 희보(喜報)라는 길상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표범보다 호랑이를 그린 경우가 더 많다. 호랑이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로 설화나 옛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은혜를 베풀면 반드시 그 이상의 보답을 한다는 영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우리와 애환을 함께 해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지녔던 정서나 생각이 호랑이를 통해서 투영되기도 하였으며, 반대로 호랑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생각을 읽을 수도 있다. 호랑이는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맹수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를 악에서 지켜주는 벽사의 존재이기도 했다.
이런 호랑이에 대한 관념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이 호랑이 그림이다. 누가 그렸는지도 알 수 없는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염원과 소망이 무엇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고, 그들의 정서를 읽어 낼 수 있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