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2050] 박선화 도 농업기술원 친환경기술국장

농촌지도자로 출발 생활개선 맡아…도내 시·군 전통식품 상품으로 발굴

도내 농업기술원에서는 '여성 승진 1호'만 해왔다. 부담감은 컸다. '여자라고 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게 그의 신조. 무조건 들이대고 보는 그의 추진력이 이런 부담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했다.

 

박선화 전라북도 농업기술원 친환경기술국장(54). 전북대 농과대학 원예학과를 졸업한 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농촌 지도자 자격 시험을 치르면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전부 남자들이 하는 일이더라구요. 담당 업무를 농촌 지도자에서 생활개선사업으로 바꾸게 됐죠. 농촌여성을 대상으로 한 부엌 개량과 같은 생활환경 개선 외에도 농업기술센터 연계한 소득 지원 활동을 도맡았습니다."

 

농사를 짓는 경우 호주머니는 다 남성들의 몫으로 돌아가던 시절. 그저 묵묵히 일하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고 여기던 박 국장은 농촌여성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박 국장은 "그들의 자긍심도 심어주고, 스트레스도 해소하면서 용돈을 벌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300∼500만원까지 지원해 농외소득을 벌 수 있도록 하는 생활개선사업은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제도였다"고 평가했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 아주 맛있는 유과를 만들어도 나눠먹을 생각만 했지, 내다 팔 생각은 못했거든요. 근데 이게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진안이 제일 먼저 시작했죠. 후에 익산, 고창, 정읍, 남원으로 옮겨졌지만. 김치,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 다양한 아이템이 쉴새 없이 나오더군요."

 

근면함과 성실함은 그의 무기. 밤낮없이 논·밭을 다녀야 하는 까닭에 그는 뾰족 구두 한 번 제대로 신고 다닌 일이 없다. 그래서 그의 복장은 바지에 운동화 차림이 전부였다.

 

이런 그에게도 시련은 왔다. 2007년은 가장 뼈아픈 해다. 부안군 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근무했을 때 중국발 '벼 에이즈'인 줄무늬잎마름이 번져 부안 일대 농가가 초토화됐던 것. 중국에서 날아온 애멸구가 순식간에 2000ha 가량을 먹어 치웠다.

 

"애멸구로 벼가 다 죽으니까 갑자기 농민들이 저를 향해 막 독설을 퍼붓는 거예요. 하루아침에 농사를 망쳐놨다느니, 벼농사 다 물어내라느니 등등 국회까지 불려갔을 정도니, 말 다 했죠. 이듬해 다시 애멸구가 나올까봐 일대 농가를 이 잡듯이 뒤져 방제 작업을 했어요. 거의 두 달 가까이 계화면에서 살면서. 그래서 그런지 이듬해는 애멸구가 10% 미만이 나왔죠.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당시 직원들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뜨거운 햇볕에 얼굴 새까맣게 그을리면서 고생이 참 많았다"며 "그 덕분에 모범 사례로 인정 받아 전국에서 구경하러 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캄캄한 밤에 자전거 타고 간다는 맘으로 살았습니다. 누가 끌어줄 사람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어요. 넘어지지 않으려면, 오직 내가 열심히 페달을 밟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내가 잘 가는지 못 가는지 뒤에서 잘 지켜보면서 따라오라구요. 새해엔 이곳에 더 많은 여자 후배들이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