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삼재는 근대 유학의 거두인 전주출신 간재(艮齋) 전우(1841-1922)의 제자 3명, 즉 금재(欽齋) 최병심, 고재(顧齋) 이병은, 유재(裕齋) 송기면 등을 일컫는다.
이들은 한때 유학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던 고리타분한 인물로 치부되었지만 지금은 동양학이 새롭게 해석되면서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이들 학자들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성리학과 관련된 많은 글을 남겼고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그동안 전북유학은 조선 성리학에서 주류를 차지하지 못한게 사실이다. 크게 주리론과 주기론의 양대산맥으로 이어져 온 조선 성리학은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양분된다. 이중 기호학파에 속하는 호남유학은 기대승 이항 김인후 등의 걸출한 학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대부분 전남에 연고를 두었고 전북출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주출신 유숭조 이기경 전우 등은 학문적 깊이에서 이들 못지 않았다. 이들 중 이기경은 학문적 조예가 깊었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 오목대 부근에 살면서 강학과 후학양성에 힘썼다. 또 간재는 성존심비(性尊心卑)라는 독특한 명제를 제시했고 3재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와 함께 한옥마을에는 박인규, 이종림, 김영안, 이주필가옥, 인동장씨 고택, 양사재 사마재 등 선비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들을 복원해 조선의 선비정신을 살리고, 빈약한 한옥마을의 콘텐츠를 풍부히 한다면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들 인물에 대한 연구다. 학술적 접근이 한차례 있긴 했으나 크게 미흡하다. 과연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비롯 학문적 깊이나 영향력 등이 좀더 조명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예산문제다. 열악한 전주시의 재정이나 사업의 정통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국가예산을 지원 받는 게 옳다. 그러기 위해선 기초자료 조사 등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