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관리를 위해 설치한 최신 장비들이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8일 오후, 순창군 순창읍 간암리 남산 마을의 '귀래정 신말주후손세거지(전라북도지정문화재 제67호 ·이하 세거지)'에 신모 씨(58)가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신씨는 이 곳에 보관 중이던 '고령 신씨'의 족보와 종중 관련 고문서들을 들고 나왔다. 갑작스런 소음에 놀란 마을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 현장에서 신 씨를 붙잡았다. 설치된 CC카메라 등 보안 장치를 확인했다면 군청 관계자가 먼저 출동했어야 맞는 상황. 하지만 그때까지도 관리를 맡은 순창군청 관계자들은 지정 문화재 내에 있던 고문서 등이 도난당할 뻔 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숭례문이 불에 타 사라진 뒤, 전북도는 220개의 국가 또는 도 지정 목조문화재에 '재난방재시스템구축사업' 명목으로 50억 원을 지원했다.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과 전주 풍남문(보물 제308호)·전주 객사(보물 제583호) 등에는 각각 2000여만 원에 달하는 CC(폐쇄회로)TV와 소화전 등을 설치했다.
그밖에 목조문화재자료 등에는 국고 5억원과 지방비 3억원 등 공모사업비로 CC카메라·센서·소화기 등 안전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절도범이 든 순창 귀래정에도 이 사업으로 CC카메라를 설치했다.
하지만 24시간 녹화되는 CCTV와 달리 CC카메라는 센서를 통해 물체의 움직임이 감지되거나 온도나 습도 등이 달라질 때에만 사진을 찍어 전송한다. 화면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상주 직원이 없는 경우, 이런 CC카메라의 촬영은 의미가 없다. 일일이 사진 장면을 확인하고 이상 유무를 파악해야 하지만, 군청의 인력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순창군 관계자는 "귀래정 문화재의 경우, 사유 재산으로 등록돼 개인이 관리를 맡고 있는 상황이라 행정에서 지시나 간섭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상주 직원이 앉아서 화면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CC카메라의 특성상 감시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제 역할을 못하는 카메라를 한 대당 2~300만 원을 들여 설치한 셈이다.
도 문화예술과 문화재계 관계자는 "국보나 보물에는 CCTV가 설치됐거나 오는 4월까지 설치를 마칠 계획이지만, 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문화재자료들의 경우 공모 사업을 통해 간신히 예산을 마련하는 수준이다보니 고가의 장비 설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CC카메라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밝혔다.
경찰은 건조물침입 혐의로 신 씨를 입건하고, 고령 신씨 문중 관계자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절도 등 여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