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손뗀 축제, 시민들이 되살려"

일본 유바리 영화제 사와다 나오야 사무국장

"영화제라는 건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유바리(夕長) 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사와다 나오야(澤田直矢·49) 사무국장은 "영화제로 결국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마을의 주민들"이라고 말했다.

 

1990년 1회 영화제 이후 순항을 계속하던 유바리 영화제는 2006년 시가 파산을 선언한 이후 2007년 한차례 문을 닫아야 했다.

 

망해버린 지방자치단체가 완전히 손을 뗀 이 영화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이곳의 순박한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비영리기구(NPO) 법인을 만들어 스스로의 힘으로 영화제를 다시 이어나가기로 했고 사와다씨는 이들의 맨 앞자리에 있었다.

 

유바리에서 태어나 인근 대도시 삿포로(札晃)에서 자란 그는 건설회사에서 일하던 1997년 자원봉사자로 영화제에 처음 참여한 뒤 영화제의 스태프가 되어 영화제 굴곡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영화제 폐막일인 1일 영화제 사무국에서 만난 사와다 사무국장은 "망해버린 도시이기 때문에 영화제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망에 빠진 시민들에게는 희망이라는 빛이 필요했고 그 빛은 바로 영화제였다"고 힘을 줬다.

 

--영화제를 재개한지 3회째다. 올해 관객수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 아직 정확한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1만2천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시 파산 이전인 1만8천명에는 못미치지만 2008년 9천명으로 바닥을 쳤던 관객수가 꽤 많이 회복됐다. 유바리시의 인구가 1만1천명인데 시 인구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제를 다녀갔다.

 

--영화제 중지 이후 재개 결정을 할 때 시민들 사이에 존폐 논란도 적지 않았을것 같다.

 

▲ 의외로 반대하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올해 영화제에 게스트로 온 야마다 요지 감독이 "영화제라는 것은 누군가의 희망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이 우리 영화제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시가 재정 파탄을 맞았으니까 비로소 영화제를 계속해야 한다. 시민들은 시가 망하자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이때 필요한 것이 희망이었다.

 

망한 지역의 주민으로서 가장 괴로운 것은 우리의 도시가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영화제가 시의 파산 이후 힘들어진 주민들의 삶에 빛으로 작용한 것이다.

 

--영화제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 연간 5천만엔(약 6천500만원) 수준이다. 한참 영화제가 성황을 이룰 때 1억엔이상이었으니 절반가량으로 떨어진 것이다.

 

홋카이도 부(府)에서 3년 한시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게 예산의 3분의 1 정도를 충당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기업 스폰서를 통해 확보하고 있다. 시에서 받는돈은 한 푼도 없다.

 

--'파탄 도시'로서 유바리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된 뒤 스폰서 확보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은데.

 

▲ 운이 좋았던 게 영화제가 위기에 처하자 국내외에서 응원의 메시지가 많이 있었다. 일본도 최근 몇년 사이 최악의 불경기라서 스폰서 구하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바리 영화제의 명성이 여전한 게 도움이 됐다. 실제로 스폰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업 계획을 가지고 계속 문을 두드렸고 결국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화려한 상영관을 임대하는 대신 소박하지만 유바리의 특색이 있는 상영관을 유지하는 등 자체적으로 예산을 줄이는 노력을 같이 했어야 했다.

 

--예산이 다른 영화제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편이다. 상영작의 수준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 영화광이나 일반인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만큼 다양한 영화가 초청될 수 있다. 스타가 나오는 대중적인 작품이 초청될 수도 있지만 영화광들을 만족시키는 영화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영작 한편 한편의 수준을 가지고 영화제 전체를 봐서는 안된다.

 

다행히 유바리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국내외에 여전히 많은 덕분에 좋은 영화들이 많이 출품되고 있다. 세계의 다른 판타스틱 영화제들과 비교해 상영 프로그램의 수준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영화인들이나 기자들이 자신의 돈으로 영화제에 참여하는 게 유난히 많은 것도 유바리영화제의 큰 특징인 것 같다.

 

▲ 초청된 게스트 중 절반가량은 교통비나 숙박비를 자신이 부담해서 유바리를 찾는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내외 언론사에 대해서도 참가비 지원을 전혀 할 수 없는 게 사실이지만 매년 적지 않은 언론에서 영화제를 취재해 간다. 500여명의 자원봉사자 중 절반가량이 역시 자신이 교통비와 숙박비를 내고 영화제를 도와주시러 오시는 분들이다.

 

스타 감독(오구리 슈운)이 만들고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개막작 '슈얼리 섬데이'의 경우도 (스텝들이)대규모로 영화제에 참가했지만 일부는 개인들이 부담을 지고 영화제에 참가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인들이 유바리 영화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영화제 기간 시민들이 "어서오세요'(よう こそ)라는 말 대신 "잘 돌아오셨습니다.(おかえりなさい)라고 인사를 한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일종의 습관이 된 것 같다.

 

여기에는 유바리 영화제를 자기 집으로 생각해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정(情)이 담겨 있다. 좁고 한정된 거리에서 열리는 영화제인 만큼 영화인들과 스타들, 관객들, 주민들이 한자리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큰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