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30여년 동안 공과대학 교수로 강단에 섰다. 학과장과 연구소장은 물론, 국책지원사업단장·공과대학장·본부 학생처장 등 학내 요직도 두루 거쳤다.
그리고 나이 이순(耳順) 무렵에 가요 음반을 내고, 정년퇴임과 함께 아예 트로트 가수 겸 악단 사회자로 나섰다. 악단의 일원으로 전국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노래·음악 봉사활동에 몰두하면서 퇴임후의 공허함이나 일상의 공백도 없다.
애초 강단보다는 무대에 서기를 원했던 만큼 조금은 늦게 꿈을 이룬 셈이다.
김종교 전북대 명예교수(66·전자정보공학부)가 새 학기를 앞둔 지난달 25일, 대학 연구실에 나왔다. 지난해 8월말 정년퇴임한 후에도 한 학기 동안은 1주일에 3시간씩 강의를 맡아 연구실을 지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방을 비워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부터 강산이 세번을 변하도록 한결같이 지켜 온 연구실에서 손때 묻은 책장을 한칸 한칸씩 비워내는 심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김교수의 표정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마음은 벌써 연구실을 다 비우고 새로 시작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우리 사회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여생을 보낼 생각입니다. 가진 재주가 음악이니 지금처럼 노래 봉사에 힘 써야죠."
김교수는 늦깎이 트로트 가수다. 지난 2003년 김수환씨 등 전문 가요 작곡가들로부터 '강변연가'와 '길 잃은 사슴'·'아내'등 트로트 계열의 노래 여섯곡을 받아 수개월의 연습을 거쳐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다. 성악 전공 교수들이 음반을 내는 경우는 가끔 있었지만 비전공자, 그것도 공과대학 교수가 대중가요 음반을 낸 것은 김교수가 국내 최초다. 음반은 모두 6000여장을 제작, 곳곳에 기증했다.
'언젠가 음반을 꼭 내겠다'는 오랜 계획을 실현한 그는 지방과 전국 규모의 각종 행사에 출연, 단순한 기념음반이라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완주군 조촌면(현재 전주시)이 고향인 김교수의 꿈은 사실 가수와 아나운서였다.
"초등학생 때 축음기가 있었던 큰아버지 댁에 틈만 나면 찾아가 노래를 들었고, 그 곳에서 사촌 형의 기타·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며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취미가 온통 노래와 음악이었던 청년 시절, 그는 전국의 내로라 하는 노래꾼들이 출전하는 각종 노래자랑대회에 참가,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학과 수석으로 대학(전북대 전기공학과)을 졸업, 공직에 특채돼 당시 체신부 전주전신전화국에 근무했던 그는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펴기 위해 가수와 방송국 아나운서의 문을 잇따라 두드렸지만 쉽게 열지 못하고 결국 대학 강단에 서게됐다.
교수 재직 중에도 놓지 못한 노래와 음악은 이제 연구실을 떠나 온 그의 일상이 됐다.
김교수는 지난 2004년부터 도내 60세 이상의 '어르신' 연주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에버그린(Ever-Green) 밴드'(단장 황병근)에서 전속 MC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에버그린 밴드는 당초 사회자 없이 공연을 진행했지만 아나운서를 꿈꿨던 김교수가 이를 지적, 곧바로 MC 자리까지 꿰찬 것이다.
그는 "에버그린 밴드에 입단한 후 한 해 50~60곳씩, 6년동안 300여 차례에 걸쳐 전국의 교도소와 요양병원·노인복지관·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음악회를 열었다"면서 "음악공연을 다니면서 우리 사회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체감, 사회봉사 활동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 봄이 찾아오면서 겨울 휴식기를 가졌던 에버그린 밴드도 바빠졌다. 오는 6일 전체모임을 갖고 공연 스케줄을 논의한 후 매주 토요일 오후에 2~3시간씩 연습을 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사회 봉사활동을 결심한 '무대 체질' 김교수의 열정은 노래에 그치지 않는다. '목포의 눈물'·'콰이강의 다리'등 밴드에서 자주 연주하는 110여개의 곡을 망라한 해설집을 만들어 연주에 앞서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마술사 자격증을 따내 간단한 마술공연도 선보이고 있다.
김교수는 지난달부터 집 근처 전주 덕진노인복지회관에서 일본어 중급반 수업을 받고 있다. 한옥마을 등 전주를 찾는 일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통역 자원봉사에 참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난해 신문(전북일보)에서 읽은 60~70대 노인들의 통역 봉사활동 기사가 자극이 됐다.
그는 또 이번 여름 전북대 언어교육원에서 개설하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교사 양성과정에도 참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