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만물이 약동하는 3월이다. 아파트 주변엔 벌써 밝은색 차림의 어린이들 발걸음이 분주하다. 친구집에 놀러 가느냐고 물으니 일거에 고개를 흔든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도 한결같이 빈 손이 아니다. 알고보니 무슨무슨 학원이나 개인지도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이런 모습은 미국의 오바마대통령도 인정하리만큼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우리 사회의 풍속도가 된지 오래다. 여기에 TV, 컴퓨터, 문제집 등 가까이 보는 데에만 익숙해져 점차 근시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먼 산마루', '높푸른 하늘과 구름', '쟁반같이 둥근 달과 별', 나아가 '유유히 흐르는 강' 등 멀리, 높이, 그리고 깊은 곳을 쳐다 볼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이격된 거리상의 문제라기보다 그만치 '상상의 공간'이 일실되어졌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이 상상의 공간이야 말로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희생할 줄 아는, 이 시대에 그무엇보다 소중한 시적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0년대 말에 상연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기억할 것이다. 톰 슐만 원작의 이 영화는 1859년에 창립된 미국의 웰튼학원에 들어온 50명의 신입생 입학식으로 시작된다. 배가 나온 교장선생은 본교가 전통있는 명문교임을 자랑하며 마치 사관학교에 준하는 엄격한 규율을 강조한다. 이어 본교 출신의 새 교사 죤 키티선생을 소개한다.
그런데 키티선생은 수업 첫 시간부터 학생들을 놀라게 한다. 낭랑히 시를 읊조려 주는데 "모을 수 있을 때 장미를 모으라/ 언젠가 우리는 죽는다." 라면서 학생들을 모두 교실 벽에 걸린 선배들의 빛바랜 사진 앞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는 '제군들 이미 그들은 묻혔다, 그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라며 목청을 높인다 오랜기간 엄격한 통제 속에서만 자라온 이들을 그 틀에서 과감이 벗어나게 하려는 키티선생의 깊은 뜻을 알아차린 것은 그 이후였다.
어느날 키티선생은 학생시절 어느 동굴 속에서 동료들과 낭만주의자가 되어 시와 영혼, 자유 그리고 여자이야기로 날을 샜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때 만든 써클명이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 키티선생을 유달리 따랐던 닐 군이 몇몇 동료들과 한밤중에 이 동굴을 찾아내어 선생처럼 테니슨의 시를 낭송하며 이상한 춤과 노래, 그리고 여학생 사진을 돌려보는 등 실로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한다. 다음날 수업시간엔 키티선생이 갑자기 교탁위에 오르더니 모두를 책상위에 오르라 한다. 머뭇거리던 이들이 '죽은시인의사회' 멤버들을 중심으로 하나 둘 오르자 '저 멀리를 보아라! 저 하늘은 모두 너희의 것이다' 라고 외쳐댄다. 그 후 닐군이 키티선생이 연출하는 섹스피어의 극 '한여름밤의 꿈'에 오로지 의과대학 진학만을 열망하고 있는 아버지의 강한 경고에도 주연으로 출연한다. 이윽고 막이 내리고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속에 나타난 아버지는, 당장 전학 후 육군사관학교에 보내겠노라면서 닐을 끌고 나간다.
가족 모두가 깊이 잠든 밤 이충에서 '빵!' 하고 총성이 났다. 잠결에 달려온 아버지가 '안돼!' 하며 끌어 안았으나 그 때 닐은 실로 오랜만에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 '한여름밤의 꿈' 속에서 드넓은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지 더듬어볼 일이다.
/허소라 (시인. 군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