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해내뜰 그 길은 나의 선생님 - 문효치

문효치(시인·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나는 어린 시절 고향의 시골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나를 가르쳐 주신 분은 물론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나의 선생님은 또 있었다. 그것은 학교를 오가는 '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등하교 길의 주변에 펼쳐져 있는 자연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무척 외로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6.25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입학을 했기 때문에 취학 아동이 다른 학년에 비해서 월등히 적었다. 우리 동네에서 같은 학년에 다니는 학생은 단 두 명이었다. 그것도 한 명은 여학생이었다. 그때는 그 어린 것들도 내외법을 지켜서 따로 떨어져서 다녔다. 아침의 등굣길은 다른 학년 아이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었지만 하교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학년 마다 끝나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시골길은 내 외로움을 많이 덜어주었다. 교장사택이 있는 학교 뒷문으로 나오면 콩밭과 수수밭이 있었다. 보라색 콩꽃이 넓은 콩잎에 가려 뽀도시 작은 얼굴을 비치면 그것이 그렇게 새참하고 예뻤다. 옆에서 너울거리며 서 있는 키 큰 수수잎들이 하늘의 끝을 간지를 때엔 내 옆구리가 간지러운 듯 했다. 그 콩밭과 수수밭을 잠깐 지나면 논길로 이어진다. 간신히 소달구지나 다닐 만한 좁은 길이었지만 많은 추억이 어린 길이다. 이 논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펼쳐진 들판을 해내뜰이라고 불렀다. 이 해내뜰에서 나는 바람의 신비함을 처음 느낄 수 있었다.

 

해내뜰은 꽤 넓은 들판이었기 때문에 사방이 툭 터져 있었다. 따라서 바람이 잘 소통되는 곳이었다. 넓게 퍼진 논은 똑같은 키로 자라고 있는 벼잎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그 벼잎들이 일제히 누웠다가 일어서곤 했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벼잎들이 저 멀리서부터 차례로 물결을 이루는 모습에서 나는 바람의 모습을 함께 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바람은 벼잎과 같은 초록색이라고 생각했다.

 

군산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습윤해서 살갗에 닿는 기분도 꽤 부드럽게 느껴졌다. 해내뜰의 길은 옆에 농수로를 끼고 뻗어나갔다. 그 농수로를 우리는 똘이가고 했다. 이 똘은 나의 중요한 놀이터였다. 추운 겨울이 아니고는 그 똘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똘에 그림자를 담그며 길을 걷다가 나는 어느새 책보자기를 길뚝에 내려놓고 바지를 걷고 살그머니 물로 들어갔다. 송사리떼가 금방 잡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작은 물고기가 어찌 그리도 빠른지 손으로 잡을 수는 없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도랑이기 때문에 비록 얕아도 많은 생물들이 살았다. 운이 좋으면 어른 손바닥만한 시꺼먼 조개를 잡았다. 뱀장어같은 것도 가끔 건져 올리곤 했다. 피라미, 매기, 빠가사리, 게 등이 내 친구였다.

 

물에 들어가기 싫으면 이가래, 노랑어리연, 개구리밥 등 수초를 관찰하며 놀았다. 특히 노랑어리연의 꽃빛이 참 좋았다. 해나 달의 빛깔 중에 제일 예쁜 노랑색만 골라서 꽃에 발라놓은 듯 했다. 자라풀, 보풀, 마름 같은 것들도 그 나름대로 풋풋하거나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그것들에게도 눈길이 자주 갔다.

 

물총새의 잽싼 동작은 참으로 신기했다. 어디쯤 숨어 있다가 물고기 한 마리를 겨냥하여 빠른 속도로 날아가 낚아채는 솜씨에 놀라기도 했다. 그 이름대로 정말 총알 같았다. 그 새는 깃털의 빛깔이 파란색이었는데 그 놈이 날을 때는 어디서 푸른 바람 한 점이 날아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 물풀들과 눈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즐기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 놈 때문에 고요가 깨뜨려지기도 했지만 절대로 물에 빠지지 않고 교묘하게 은빛 물고기만 한 마리 건져 올려 솟구치는 그 모습에서 후련함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들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나무가 제법 울창한 산길도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 산길에서 꾀꼬리, 두견이의 소리를 처음 듣고 기억 속에 넣어 두었다. 무슨 금관악기의 관을 통해 불어져 나오면서 만들어진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름다운 활엽수의 잎사귀들이 비벼지면서 만들어지는 소리 같기도 한 그 새소리가 내 뇌 속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몇 가지 더 있었다. 그런 새소리 틈으로 보이는 산꽃들이 참 신비스러웠다.

 

그 길에는 계절에 따라 많은 꽃들이 피곤 했다. 붓꽃, 닭의장풀,엉겅퀴, 패랭이, 메꽃 등의 빛깔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나는 그때 그 꽃의 빛깔들이 뿌리를 통해 땅 속에서 빨아올린 빛깔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땅 속은 시꺼멓거나 깜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만가지 색깔들이 우글우글 들어 있는 색깔의 큰 창고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다는데 그래서 우리의 조상님네들도 땅 속에 계실텐데 그분들은 어쩌면 아름다운 꽃빛깔 같은 세상 속에서 지낼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해찰을 해가며 놀았다. 손가락으로 땅에 금을 그어가며 낙서도 하고 나뭇가지를 집어서 사람의 얼굴이나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을 그리기도 했다.

 

나는 혼자 다니는 일이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나 혼자서 잘 놀고 즐길 줄을 알았다. 길바닥에 앉아서 흙장난을 하다가 문득 산개미들이 눈에 띄었다. 새까만 산개미들은 그다지 예쁜놈들은 아니지만 그놈들하고도 즐겁게 놀았다. 나는 쪼그만 저놈들도 생각이라는게 있어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생각이 있을까 알고 싶었다. 긴 풀대를 꺾었다. 옆에 붙은 잎들은 떼어 버리고 적당한 길이로 잘라 활처럼 둥글게 휘어서 마치 무지개다리처럼 양끝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는 땅에 꽂힌 양끝 부분에 침을 뱉어 놓았다. 그리고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무지개다리 같은 풀대위에 올려놓았다. 개미는 한쪽 방향을 향해 열심히 기어갔다. 그러나 곧 침이 고여 있는 부분에 와서는 땅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아마 그 부분을 개미는 큰 강이나 호수쯤으로 생각한 듯 했다. 개미는 뒤로 돌아, 오던 길을 되짚어 다른 한쪽 끝으로 갔다. 거기에도 역시 물(침)이 있는 것을 알고 다시 뒤로 돌았다. 개미는 그렇게 왕복을 되풀이 했다. 언제까지 저 되풀이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개미의 되풀이는 예닐곱으로 끝났다. 양쪽에 모두 물이 있어 땅으로 내려설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개미는 돌연 중간쯤에서 땅으로 뚝 떨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놈을 다시 집어 다리위에 올려놓아 보았다. 이번엔 두세 번 만에 땅으로 뛰어내렸다. 다시 집어 올려놓으니 이번엔 바로 땅으로 뛰어내렸다. 개미에게도 분명 생각이라는 게 있구나 생각하며 개미가 신기하기도 하고 귀하게도 여겨졌다.

 

고향은 내 어린시절의 삶이 남아 있는 곳이요 우리의 조상이 죽어서도 살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신의 예술'이라고 하는 자연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경험하고 상상하고 즐겼던 것들이 모두 나의 선생님이다. 우리는 고향과의 영교(靈交)를 통해 우리 삶을 격조있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책에서보다 숲이나 강이나 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요즈음 해내뜰에 가보면 옛길이 확장되고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무척 능률적이고 편리해졌다. 비가와도 신발이 진흙에 빠지지 않고 자동차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자연의 신성성에 흠에 가지 않는 범위에서의 개발을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자연의 노여움과 그 벌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선생님을 잘 섬기고 모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