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대사가 자꾸만 막힌다. 대본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리딩(Reading) 과정이 유난히 길었던 탓. 보통 20일 정도 하던 대본 리딩을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가까이 진행하고 보니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만 바빠진 셈이다. 하지만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능력은 기가 막힌다. 8일 오후 전주시립극단 연습실에서 열린 '십이야' 연습 현장.
봄마다 '세계고전명작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전주시립극단(상임연출 조민철)이 올 봄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를 꺼내들었다.
최근 시립극단 작품연보를 살펴보면 셰익스피어 작이 상대적으로 많다. "수많은 고전 명작 중에서도 그만한 작품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이 주된 이유. 특히 '십이야'는 '실수 연발' '베로나의 두 신사' '베니스의 상인' 등 이전의 희극들에서 일차사용한 수법들을 셰익스피어가 다시한번 종합적으로 쓰고 있어 '창조의 걸작이 아니라 반복 사용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조민철 상임연출은 "그동안 올려졌던 많은 희극들이 어쩌면 이 작품을 위한 습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요소들이 진일보한 형태로 재사용됐고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훨씬 원숙해졌다"며 "실한 근육을 보유한 근엄하면서도 품격있게 웃음을 주는 극으로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오시노 공작'이 다스리는 섬 일리리아에 쌍둥이 남매 '세바스찬'과 '바이올라'가 표류한다. 서로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매 중 여동생 '바이올라'는 오빠 '세바스찬'으로 변장해 사모하는 '오시노 공작'을 모시게 된다.
극은 '오시노공작-올리비아-바이올라-세바스찬'의 귀족계급의 사랑 놀음을 중심으로, '말 볼리오-토오비-앤드류-마리아-페기-광대'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제목이 '말 볼리오'로 바꿔 불릴 정도로 부줄거리도 재밌다.
시립극단의 '십이야'는 말을 간소화하고 캐릭터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서와 시대가치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은 각색으로 좁혔다. 덕분에 원작 보다 템포가 빠르다. 여배우들이 많은 극단 특성상 극의 추진체가 되는 '광대'와 '페기'를 여자로 바꿨지만, 결과적으로는 낭만희곡의 부드러움과 서정성을 더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 상임연출은 "언제나처럼 구조와 발상의 우월함에 감탄하며 작업을 했다"며 "고전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장의 배치나 인물 배치를 일부 새롭게 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미 브레이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에서 남녀를 오가는 역할을 했던 염정숙이 이란성 쌍둥이 남매 '바이올라'와 '세바스찬'을 연기한다. 책임감 있는 배우로 이번에도 무난히 역할을 소화해 낼 것이라는 기대다. 객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오시노 공작'의 하인 '세바스찬'이 된 '올리비아'가 사랑하는 '오시노 공작'을 바라보는 눈빛이 애틋하다.
슬랩스틱에 의존한 억지스러운 코미디가 아니라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코미디가 그립다면, 시립극단 제87회 정기공연 '십이야'다. 20일 오후 7시·21일 오후 3시·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