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신당이 만들어지고 있고, 반MB 세력이 단일후보를 세우고 있으며, 여당과 야당은 각종 사회적 이슈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도 딱히 다를 바가 없어서, 예비 후보자들은 표를 의식하는 정책을 발표하거나 상대 후보를 비방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전주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교육감 예비 후보들의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수막에는 '민주 교육감'이라는 글자가 공통적으로 적혀 있다. 민주당 텃밭에서 '민주'라는 글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면서, 예비 후보들이 '민주'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해지기도 했다. 후보들에 대한 인터뷰나 기사를 읽어보았을 때, 많은 분들이 MB교육정책을 겉모습만 바꿔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는 전북 학생들의 성적이 바닥권이라는 것을 앞세우고, 어떤 후보는 수능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무능력한 선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성적과 석차를 중요시 하는 사회는 절대로 창의적인 학생을 키울 수 없고, 민주적인 사회도 될 수 없다. 상대평가로 학생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토론식 수업이나 학생 적성에 맞는 수업 등을 진행 할 수 없다. 위와 아래가 명확한 제도 속에서 학생들은 기성세대도 불만을 갖는 서열화를 일찍 경험하게 된다. 나는 이런 후보들은 '민주'라는 단어를 이름 석 자 앞에서 서둘러 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기성세대보다, 교육감 예비 후보들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민주'를 왜곡하여 가르치는 것은 현 정부만으로도 족하다.
내가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유가 있다. 나는 한 때, 고등학교 재수생이 될 뻔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교 3학년생 못지않게 공부를 했지만, 내가 지원한 고등학교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곳은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고등학교 이름에 따라 어른들이 학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던 지역이었다. 그때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의 교육정책 하나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대학문턱을 밟기도 전에 재수생 노릇을 경험하게 된 것이 아닌가.
전북 지역은 평준화 지역이며, 전주 시내권 고교 성적이 비슷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비평준화 지역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전북 지역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인 현실이다. 도내 많은 학생들이 전주에 있는 고교로 진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외곽에 위치한 고교의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이것을 빌미로 MB의 교육정책에 찬성표를 던지는 어른들이 몇몇 계시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성적은 MB식 교육의 성적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잊고 있다.
교육은 산술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작업이 아니다. 진정한 교육은 학생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놀고먹는 자리부터 시작하여,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할 자리며, 공부를 하여 사회로 나아갈 힘을 주는 자리까지. 우리는 너무 어린 학생들을 잊고 살았고 그들을 너무나 괴롭혔다. 그들의 넓은 미래를 우물 안으로만 제한했다.
조만간 전북도의 교육감 후보가 명확해질 것이다. 자주 이름을 내보였던 후보, 교육계에 몸을 담았던 후보, 시민들과 여러 시민 단체로부터 추대를 받은 후보 등 학생들을 위해 맞붙을 게 틀림없다. 나는 진정한 '민주' 후보를 눈여겨보겠다. 겉에만 '민주'의 옷을 입은 후보 말고, 교육계와 학생들에게 민주의 가치를 펼칠 자리를 마련할 후보를 살펴보겠다. 교육은 교육을 전공하거나 가르친 사람들의 것만이 아니다. 교육은 모든 시민들의 의무이며 권리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백년을 망쳤으니, 앞으로의 백년 교육을 전북도민이 힘을 합쳐 만들어갔으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신고별 명문대 합격률이 아니라, 바른 사회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이다. 돈과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돈과 명예를 얻고도 다른 많은 이들을 위해 베풀 줄 알고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게 진정한 국익이다.
/백상웅(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