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역사 이야기] ⑧황사

하늘이 화나면 '흙가루' 뿌린다?…한반도 뿐만 아니라 세계전역 확산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황사'. 지난주엔 관측 사상 최악의 황사가 한반도를 덮치며 위력을 과시했다. 중국 대륙에서 몰려오는 황사는 언제쯤부터 한반도에 반갑잖은 방문을 시작했을까. 역사 기록에 의하면 3국시대부터 황사가 한반도를 방문했고, 과학적인 접근법을 적용하면 수천만년 동안 한반도의 문턱을 넘나든 것으로 확인된다.

 

황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중국 서북부와 몽골의 건조한 황토지대에서 일어난 먼지 바람이 한반도 등 지상으로 강하하는 현상'이라고 답하는 것쯤은 상식이다.

 

하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형성된 이 같은 상식은 20세기 들어서야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19세기까지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황사에 대해 주술적인 접근으로 일관했다. 선조들은 황사가 내리면 '하늘이 화가 나서 인간들을 벌주기 위해 비나 눈 대신, 흙가루를 뿌린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물론 왕들도 황사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삼국사기에 대표적인 사례가 적혀있다. 서기 870년 강풍과 함께 황사가 쏟아지자, 노한 하늘을 달래기 위해 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또 조선시대 성종 9년(1478년) 4월엔 황사가 하늘을 뒤덮는 현상이 일어나자, 잘못된 정치에 대한 응징이라고 해석했고, 연산군 시절 내린 황사에 대해서도 해괴한 현상이라며 민심이 뒤숭숭했다.

 

기록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황사가 나타난 시점은 174년(신라 아달라왕 21년) 음력 1월이다. 당시 황사를 지칭한 단어는 흙이 비처럼 내린다는 뜻의 '우토(雨土)'. 우토라는 용어는 백제·신라·고구려 등 3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삼국사기와 증보 문헌비고에 실려있다.

 

중국에서는'우토'라는 표현이 기원전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황사 역사도 현존하는 기록보다 훨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당시 황사는 늦겨울에서 봄까지 폭넓게 나타났다. 379년(백제 근구왕 5년)엔 4월(이하 음력 기준), 389년(신라 내물왕 34년) 2월, 606년(백제 무왕 7년) 3월, 627년(신라 진평왕 49년) 3월, 770년(신라 혜공왕 6년) 3월, 780년(신라 혜공왕 16년) 2월, 850년(신라 문무왕 12년) 1월에 각각 황사가 내렸다. 특히 627년엔 대규모 황사가 5일에 걸쳐 신라를 덮쳤다고 기록되어(大風雨土過五日), 3국시대에도 황사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상청 기상연구소에서 황사 전문가로 활동하는 전영신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고려시대 1017년부터 1372년까지 문헌을 통해 확인된 황사는 무려 43건에 이른다. 당시 황사를 일컫는 '우토'라는 용어는 흙비를 뜻하는 '토우(土雨)'라는 명사형으로 바뀌기 사직, 황사가 일상 생활 속에서 고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토우'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들어서도 황사에 대한 기록은 숱하게 이어진다. 황사와 관련된 조선왕조실록 기록은 흙먼지만 내린 황사현상 42건, 황사와 눈비가 섞여 내린 현상 8건, 안개와 우박이 섞인 현상 7건 등이다. 1411년(태종 11년)에는 무려 14일 동안 황사가 내렸다.

 

현재 사용되는 황사라는 용어는 1954년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채택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과학적으로 황사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수만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과학원은 바람에 의해 형성된 황토 고원을 조사한 결과 수천만년 전부터 히말라야와 티벳고원이 치솟으면서 습한 바닷바람이 차단되어 중국 북부지역이 사막으로 서서히 변했고, 이에 따라 2300만년 전부터 황사가 일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 황사는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날까

 

황사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특이한 현상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먼지 바람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건조한 장소에서는 어디서나 유사한 기상현상이 관측된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가 만들어지는 중국 북부지역과 몽골은 물론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도 대규모 황사가 발생한다. 또 미국 남부지역, 오스트레일리아 중부지역 등 건조지대와 사막지대가 분포한 지역에서도 황사가 발생한다.

 

▲ 황사는 왜 봄에만 발생할까

 

황사 발원지는 중국 황하유역과 타클라마칸 사막, 몽골의 고비사막이다. 이들 지역은 여름에는 비가 제법 내리고 식물이 자라면서 가을까지는 지표면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 겨울에는 땅이 얼어붙어 모래먼지 발생량이 적어진다. 하지만 봄에는 얼었던 토양이 녹을 뿐만 아니라, 건조기에 들어가 엄청난 양의 모래폭풍이 수시로 몰아치고 상승기류가 형성된다. 흙먼지를 가득 품은 공기는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방향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 상공을 지나는 흙바람이 고기압으로 형성된 하강기류와 맞부딪치면 뿌연 황사가 한반도 지상으로 내려오고, 이 현상이 황사이다.

 

▲ 황사는 얼마나 멀리 날아갈까

 

중국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황사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직접적인 영향권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된 황사는 하와이나 알래스카 북부 해안에 침적된다.

 

때에 따라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수준을 가볍게 능가하는 사정거리도 자랑한다. 위성을 통한 연구에 따르면 황사가 북미 대륙까지 확산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황사가 관측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발생한 황사도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는 물론 미국 플로리다반도까지 초장거리를 여행한다는 사실이 수차례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