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김용택 시인의 못다한 학교, 그리고 詩 이야기

「아이들이 뛰노는…」마지막 수업서도 못 일러준 세상사는 법

"얼마전에 내가 진짜 이뻐했던 대길이를 전주 결혼식장에서 만난 거야. 너무 반가워서, "대길아~"하고 뛰어갔는데, 아, 이 놈은 "안녕하세요"하고는 그냥 지나가버리는 거야. 내가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업고 다니고 장난도 잘 치고 그랬는데…. 원래 2학년 애들이 금방 잊어버린다는 건 알고 있었어도, 겁나게 서운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니까."

 

"아이들 앞에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는 선생님이고 싶다"는 김용택 시인(62). 그러나 가끔은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1970년 5월 1일, 그는 처음 교단에 섰다. 그 때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두려웠다. 한 5년쯤 지나서야 교사라는 게 어떤 것인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2008년 8월 30일, 그는 교단을 떠났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날짜를 잡아 교실로 불러 마지막 수업을 했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라.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해라.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른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들이었다.

 

최근 펴낸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맞추다」(문학동네)는 마지막 수업에서도 하지 못한, 시인의 학교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재밌어요. 그걸 바라보며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것들을 조금씩 메모해 놨었죠. 학교를 나와 정리하려고 보니 한참 지나와 버렸다는 생각에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 생을 다 보낸 그 세상 그 세월을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이 변한 만큼, 학교도 변했다. 생각하면, 가만가만 눈물이 고여온다.

 

시인은 38년의 시간 중 26년을 2학년만 가르쳤다. 계산이 없는 순수한 나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통했다. 2학년이야 말로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주지 않아도 뛰어놀 땅만 있으면 즐겁고 행복해 하는 나이였다. 2학년과 놀며 시인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예순살이 넘어서도 아이들 앞에 서면 내가 너무 낡은 인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자유로워요. 그동안 썼던 섬진강 이야기를 6∼7권 정도로 다시 정리하고 있고, 얼마전에는 지리산에도 다녀왔습니다. 이창동 감독과 영화도 찍었는데, 윤정희씨한테 시를 가르치는 '김용탁 시인'으로 나옵니다."

 

젊은 시인들 시도 많이 읽었다. 그들은 더이상 김소월도, 김수영도, 신동엽도, 서정주도, 황지우도 아니었다. "아직도 젖을 물고 징징거리는 문학적 가난이 싫다"는 시인은 "시대적인 사명을 다한 식은 말들을 붙잡고 더이상 사정하지" 않는, '자전거를 타고 두 손을 놓아버린 손'의 자유를 느꼈다.

 

그래서 「시가 내게로 왔다 3」(마음산책)를 엮었다. 출판사의 요청이나 오랜 계획에 의해 묶어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인의 가슴을 벅차게 만든, 시인에게 온 시들이다.

 

"모아진 시들을 다 읽고 나서 세상을 둘러보니 마치 딴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답답한 굴속을 막 빠져나온 후련함을 맛보았지요. 그동안 우리 시가,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쉽게도 젊은 시인들을 외면해 왔던 것 같아요."

 

70∼80년대가 보수(保守)가 된 거다. 시대는 변했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20세기 후반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이제 시인도 새로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새로운 글이란 더 치열하게 시대의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는 것. 그는 "올해까지만 옛날에 머물러 있겠다"고 했다. 더 사나운 글을 위해 좀더 생각이 깊어지기 위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