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역에서 단체장 선거를 준비하던 한 예비후보는 이런 경험을 했다. 한 남자가 "당신을 지지할 당원을 여러 명 모아줄 수 있다. 당비 낼 돈과 약간의 수고비만 주면 된다"며 접근해 왔다. 당내 경선준비에 여념이 없던 이 예비후보는 이 남자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 남자는 300명이 넘는 당원을 모아왔고 예비후보는 이들의 당비 10개월치 700여만원을 포함, 1,000만원을 건넸다. 전형적인 선거브로커의 수법이다.
브로커(broker)의 사전적 의미는 독립된 제3자로서 타인 간 상행위의 매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매개가 이뤄지면 매매 쌍방으로부터 균등한 수수료를 받는 중개인이다. 좋은 의미의 경제 용어이지만 사기성이 농후하면 질서를 깨뜨리고 이익을 챙기는 '거간꾼'으로 비하되고 만다. 토지거래에서 부터 중고차, 병역, 입학사정관제에 이르기까지 브로커가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다. 선거에서는 선거브로커가 날뛰기 마련인데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표를 긁어 모아야 하는 정치인게 선거 브로커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특히 기성 정치인에 비해 조직력이 약한 정치 신인들은 쉽게 덫에 걸려 돈만 날리고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유형도 갖가지다. 자녀 취직이나 보험 가입을 요구하기도 하고 '당선되면 꼭 한 자리 챙겨 달라'며 노골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아예 공천작업을 지휘하면서 '사후' 를 보장받는 통 큰 선거 브로커들도 있다. 이런 경우엔 당선되더라도 선거브로커의 꼭두각시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시끄럽다. 녹취록 등이 등장해 말썽을 일으키는 게 다 그런 연유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익산지역이 녹취록 사건으로 혼란스럽다. '공천헌금 7000∼8000만원 요구설' '시장 예비후보에 대한 선거준비 자금 5000만원 요구설' 등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당사자들이 고발한 만큼 선관위와 사법당국이 민첩하게 조사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왜 이 시점에서 녹취록이 공개됐는 지도 캐야 할 일이다. 대개는 부당함을 내세우지만 자기 마음대로 안되니까 세상에 터뜨리는 게 녹취록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선거브로커가 개입됐을 수도 있다. 숨어서 지켜보는 선거 브로커, 배후에서 조종한 '악마의 손'은 웃고 있을 것이다.
/이경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