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능력이자 자본이 되는 사회

"당신이 이혼한 아내를 잊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미워했던 전처로부터 인정받으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유명 토크 프로그램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심리치료사는 출연자를 환자로 취급하면서 이렇게 그의 심리를 분석한다. 대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친다.

 

대중매체에서 보는 심리학ㆍ정신분석학적 설명이 시청자의 인기를 끌고, 심리학적 틀로 접근한 대중실용서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시대다.

 

이런 설명이 주가를 높이는 이유는 이렇게 명쾌하면서도 중립적으로 보이는 설명을 대중이 원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심리학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심리학은 노사간의 감정적 소통을 강조하면서 기업에서 노동자와 기업가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노동자는 심리학적 소통이 직장 내 관계와 출세의 통로를 민주화한다고 생각했고, 기업가는 그것이 노동 소요를 막고 계급투쟁을 무마해 이윤을 늘려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사회학자 아도르노에 대한 강의를 정리한 '감정 자본주의'(돌베개 펴냄)에서 심리학이 기업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현대사회를 감정이 능력이자 자본이 되는 사회로 변화시켰다는 점을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이와 같은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심리학적 경영이론은 엘튼 마요가 1920년대에 행한 연구다.

 

마요는 당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억제되지 않은 이야기와 감정을 끌어내고 신뢰를 얻는 방법'으로 '치료면담'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가족간 갈등과 같은 감정적인 내용이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을 발견했다.

 

마요의 연구 이후 건전한 가정생활을 비롯한 '감정'은 기업에서 중요한 개념이 됐으며, 이에 따라 감정에 점수를 매겨 등급화하는 방법이 고안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대표적 등급화가 EQ로 널리 알려진 대니얼 골먼의 감정지능(EI)이다. EI는 생산성이 높은 직원과 낮은 직원을 등급화하고, 감정능력이 좋은 사람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는 명제를 자리 잡게 했다.

 

이에 따라 현대사회에서는 감정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관리 대상이 됐고, 가족간 갈등과 연애 문제 등 사적인 것을 관리하는 것 역시 기업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

 

저자는 이런 사회에서의 소통이란 차가운 업무에 불과하다고 '감정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낭만적 사랑'을 제시한다. 합리적인 가치 계산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끌림을 복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김정아 옮김. 240쪽.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