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정우영 세번째 시집 '살구꽃 그림자'

고향집 사랑방 흙벽의 그을음과 같은 '작은 역사' 읊다

"분노보다는 위로에 더 눈길이 간다"고 했던 정우영 시인(50). 1989년 '민중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가 세번째 시집 「살구꽃 그림자」(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시인의 고향은 임실. 수십 년 전 떠나온 생가 뒤 대숲과 흙벽의 그을음이 시집 표지와 면지 속에 무늬와 빛깔로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시간과 기억들에 나는 들려 있다. 한동안 나를 지탱해준 힘들은 이들에게서 나왔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그 무엇들이 나를 이끈다."

 

고향집 사랑방 흙벽을 감싸고 있는 그을음, 아롱지는 그리움을 채워가는 거미줄, 지금은 안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의 바지런한 움직임들, 실체이면서도 실체가 아닌 것처럼 그늘 속에 스며 있는 것들이 그에게는 시로 다가온다.

 

사회학적 테마로부터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이어져온 이전 시집을 통해 시언어의 본질적인 변화를 겪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큰 역사'의 주름 속에 가려진 '작은 역사'를 되살리고자 한다. '역사의 틈새를 메우는 실금들'인 것.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수연씨는 "시인의 시선에 포착된 대상들은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시간을 새롭게 하고 새로워진 시간과 함께 재탄생된다"며 "그는 미래를 재구성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의 시에서는 죽고, 늙고, 낡은 것들이 시간을 넘어 아직 오지 않은, 혹은 오지 않을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