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시어머니 보따리속 '살맛 나는 이야기' 펼치다

시어머니 박춘옥씨·며느리 안소민씨 결혼 앨범·보자기·바늘집 등 작품전시회

'구닥다리' 물건이 명품(名品)으로 취급받는 곳. 안소민(33·전주 MBC 방송작가)씨네 집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안씨의 시어머니 박춘옥(74)씨의 살림. 박씨가 결혼할 때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평균 수명이 30여 년 이상 된다. 박씨의 친정 어머니가 노리개를 팔아 장만해 준 은수저 한 벌은 손잡이 무늬까지 닳고 닳았지만, 아직도 밥상에 오른다. 박씨가 임신했을 당시 입었던 임부복을 비롯해 포대기도 안씨의 몫이 됐다.

 

"40년 이상 된 것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낡고 닳기만 했다면 안 썼을 테지만, 얼마나 보드랍고 포근한 지 모릅니다. 이런 천은 이제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어요."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대표 김지연)에서 열릴 '시어머니의 보따리를 펼치며'전은 장롱 속 깊이 간직한 박씨의 보따리를 안씨가 꺼내면서부터다. 안씨는 "시어머니가 두 아이의 기침 감기를 낫게 해주기 위해 약배즙을 만들어 준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쓰면서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시어머니가 칠십 평생 간직하신 보물을 모아 생활박물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전시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박씨가 이 모든 물건들을 흔쾌히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자질구레해서 남 앞에 내놓기 민망하다", "이게 무슨 이야기꺼리가 되느냐"며 사양했다. 이에 김지연 대표가 "보따리 속 이야기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사연"이라며 부추겼고 안씨가 거들어 박씨의 마음을 돌렸다.

 

"저희 어머니가 시집 보낼 때 한 가지 한 가지 신경 써서 해준 게 제일 애착이 가죠. 어머니가 종갓집 맏며느리였기에 참 얌전하게 살림을 했지요. 저는 우리 어머니에 비하면 솜씨가 없어요."

 

박씨가 시집 올 때 가져온 백동화로는 아직도 윤이 난다. 옷이나 버선 기울 때 쓰도록 천 조각을 모아 만든 헝겊 보따리, 안쪽에 반찬 국물이 배어들지 않도록 기름 먹인 종이를 덧댄 노란 상보, 색색의 골무까지 박씨의 친정 어머니 작품. 매년 물건을 꺼내 정성스레 닦고 보관해온 박씨의 정성이 덧대어져 보관 상태가 좋다.

 

박씨의 남편 신태근씨의 결혼 앨범·청첩장, 신씨가 셋째 아이를 가진 박씨에게 지방으로 연수간 사이 보낸 편지 등을 보면 이들 부부 금슬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신씨가 20대 즐겨 입은 꽃무늬 양단 조끼, 박씨가 신혼 때 즐겨 낀 흰 레이스 장갑을 보면, 부부가 보통 멋쟁이가 아니었던 듯.

 

박씨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마련한 뜨개질 한 분홍색 뜨개질 양말은 안씨의 아이들에게도 대물림이 됐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썼던 미국제 가위는 손자·손녀 손톱깎기용으로 쓰인다.

 

안씨는 "무엇이든 새로운 것, 빠른 것, 편한 것으로 갈아타려는 세대에 어머니의 이런 진득한 고집은 불편해보이기까지 한다"며 "하지만 한 사람의 고집으로 우리에게도 저런 삶과 시대가 있었구나 하고 돌이켜볼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게 보면 한 개인의 역사지만, 확대해보면 한 시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집스럽게 간직해온 한 사람의 물건에 '칠십 년'이라는 이자가 붙어 추억의 잔고를 넉넉하게 해줄 것 같다. 전시는 10일부터 5월30일까지 계속되며, 개막식은 10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