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4·19 혁명

숭고한 희생으로 지핀 민주화의 불씨

4·19혁명 50주년을 맞은 지난 19일 서울 수유리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은 서울 석관동의 한 어린이집 원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desk@jjan.kr)

4.19혁명이 올해로 50년째를 맞았습니다. 1960년 집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항거는 각 지방에서 유혈시위로 번졌고, 3월 15일 마산시위때 실종됐던 우리고장 남원 출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눈에 취루탄이 박힌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습니다. 4.19의거로 불리다가 1993년 문민정부 출범이후 4.19혁명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이번주에는 이승만 부정부패, 불의 정권을 종식시킨 4.19혁명에 대해 알아봅시다.

 

▲4.19 혁명의 정의와 배경, 도화선, 진행과정을 알아보세요.

 

▲1960년 4.19혁명 전개 과정을 아래 도표에 의해 서술해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4.19 혁명의 명칭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세요.

 

▲4.19는 군사정권하에서는 거부감을 표시하여 4.19의거로 불리다가 김영삼 정부에 와서야 혁명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의거와 혁명을 차이점을 설명하고 군사정권시절에 4.19를 폄하한 이유를 말해 보세요

 

▲3.15부정선거의 방법들을 알아보세요.

 

4할 사전투표, 3인조에 의한 반공개 투표, 완장부대 동원으로 유권자 위협, 야당참관인 축출, 유령 유권자의 조작과 기권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투표, 내통식 기표소의 설치,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때의 혼표와 환표, 득표수의 조작 발표 등

 

▲김주열 열사에 대해 알아보세요.

 

마산상고 학생이던 김주열 열사는 1960년 3월 15일 학생 시위에 나갔다가 행방불명됐다. 4주 후인 4월 11일 그는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시신으로 떠올랐다. 김 열사의 참혹한 시신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4월 15일 새벽 고향인 남원 선산에 묻혔다. 그의 나이 17세 였다.

 

▲ <열사(烈士)' 새기는데 50년이나 걸렸다> 라는 기사 제목이 있습니다. 김주열의 묘에 새운 새 묘비석에 관한 기사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4.19혁명 50주년 기념탑에 대해 알아보세요.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 세워짐. 가로 2.8m, 세로 3m, 높이 4.6m로 '자유'를 뜻하는 원형 기단의 하층부에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정의'를 의미하는 횃불을 올렸다. 또 나선과 비둘기가 횃불을 감싼 모습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소망을 형상화 해놓고 있다.

 

▲4.19혁명의 중심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4.19혁명은 세계역사에서 보기 드문 학생이 주체가된 민주혁명이었지요. 왜 기성세대가 아니라 학생이었을까요? 자신의 주장을 발표하고 서로 비교해보세요.

 

▲4.19혁명은 자유 민주 정의를 쟁취한 주권자 혁명이면서 민본의 보편적 가치와 민족자강을 추구한 민족혁명이기 때문에 4.19혁명 기념일은 국경일로 제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기 입장을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토론하세요.

 

▲4.19혁명하면 생각나는 단어를 적어보세요. 그 단어를 이용하여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4.19가 배경이 된 문학작품을 찾아서 감상해 보세요. 그 작품을 다시 페러디 해 보세요.

 

<신동엽"껍데기는 가라">

 

▲4.19 혁명의 의의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4.19 혁명의 결과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구분하여 정리해 보세요.

 

▲4.19와 5.16, 5.18의 차이를 표로 만들어 비교해 보세요.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 홈페이지에서 4.19에 관한 사진 동영상 등의 자료를 본 후, '4.19 혁명 때 내가 고등학생이었다면'을 주제로 글쓰기를 한 후 발표하세요.

 

※ 제작에 참여하신 분들: 강석우(정읍인상고) 김병욱(김제중앙중) 이춘주(이리여고) 정성록(남원서진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