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때로는 비참하고, 때로는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현실을 작가 특유의 해학과 익살로 그려낸 단편 9편이 실렸다.
표제작은 지방 소도시의 스승과 제자들의 이야기로 전교조 교사와 그가 첫 담임을 맡았던 제자 열한 명이 모임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실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영원한 문제 스승'의 약칭으로 '영문승'으로 불렸던 교사는 교과서 이외의 얘기에 으레 "민주, 평화, 통일, 공존, 정의, 진실, 사필귀정"이라는 단어들을 썼다.
제자들은 공부하라는 말도 잘 안 하고, 자율학습 빠져도 제대로 한 번 패지도 않았던 교사에게 이제 술김에 "선생님 같은 참교육 담임을 안 만나고 개백정같이 잡아주는 담임을 만났으면, 4년제는 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원망 섞인 말을 한다.
또 다른 수록작 '우라질 양귀비'는 일부러 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와 싹이 튼 양귀비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간 '음순'네 이야기다.
음순은 누가 경찰에 자신을 신고했는지 알아내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수지 상류 쪽 방갈로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맛나슈퍼 김화투'네, 자신이 도둑놈으로 몰아 마음 상하게 했던 '백수 청년' 등 마음에 걸리는 마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책에는 이밖에 자식에게는 "흙 파먹고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죽을 똥 싸가면서 공부시킨" 아버지와 "펜대 굴리는 삶"을 사는 아들 사이를 그린 '내시경'을 비롯해 소시민의 다양한 삶을 그린 단편들이 수록됐다.
해설을 쓴 문학 평론가 이선우 씨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해 "딱히 누구를 주인공이라고 꼽을 수 없다"며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일파만파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이를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인물의 면면과 그들이 엮어가는 삶의 가락이야말로 김종광 소설의 매력"이라고 적었다.
352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