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많고 인간적인 법정스님 그려"

"법정스님은 '베푼다'는 말을 싫어하셨어요. 내 것이 없는데 어떻게 베푸느냐는 것이지요. 다만, 갖고 있다가 돌려주는 것이니 나눈다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이것이 무소유지요. 정이 많고 인간적인 스님이셨습니다."

 

작가 정찬주(57)씨가 지난 3월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그린 '소설 무소유'(열림원)를 냈다.

 

정씨는 1984년 출판사 샘터사의 편집자로 스님을 처음 만나 스님의 산문집 10여 권을 펴내는 등 인연을 쌓으며 재가제자(在家弟子)가 돼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의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책 출간을 맞아 26일 서울시내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씨는 스님이 오래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갈 때 스님이 들려줬던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을 메모해 이번에 책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스님에게 '좋은 말씀' 한마디를 부탁했어요. 그럴 때면 스님은 불일암 토굴에 앉아 건너편의 조계산을 가리키며 침묵하는 저 산을 바라보면 답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침묵 속에서 지혜를 얻지 못하니 인격이 완성되지 않는 것이라 하셨죠."

 

스님은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면서 굴참나무로 만든 의자를 '빠삐용 의자'로 부르며 자신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했다고 전했다.

 

속가의 인연을 끊어야 하는 스님에게 여동생은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사연이다.

 

정씨는 "스님이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여동생을 낳았다"며 "스님은 여동생을 낳기 이전의 어머니만 인정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을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서였는지 스님이 첫 탁발을 나갔을 때 예닐곱 여자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는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고, 여동생 또래 아이들만 보면 그렇게 예뻐했다고 한다.

 

스님이 서울에 오면 관객이 적은 아침 일찍 영화를 종종 보곤 했는데, 한 번은 단성사에서 주인공들이 오누이 사이로 나왔던 '서편제'를 보는 도중 손수건을 꺼내 자꾸 눈물을 훔쳤고, 강원도 오두막에서는 박항률 씨가 그린 단발머리의 '봉순이'를 한동안 걸어놓고 살았다.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 찾아온 여동생에게 "꿋꿋하게 살라"고 말했고 이후 여동생이 뭔가 말하려 하자 "내가 다 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애틋한 연민의 정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스님이 "선방의 울타리를 벗어나 '법정스님식'으로 선승이 나아갈 길을 보여줬다"며 "남의 흉내를 내지 않은 수행자이자 '나도 없는데 하물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마음으로 참다운 무소유 사상을 바탕으로 정진한 수행자"라고 평했다.

 

자신의 출판물을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언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스님의 책에서 지혜를 얻기보다는 좋은 말만 쫓으니까 그것을 '말빚'이라 보셨을 것"이라며 "그 유언은 그 말빚을 지지 않기 위해 스님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사자후'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스님은 아이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고학생을 직접 불러 장학금을 준 적이 없다며 "광주에 갈 때면 고전음악감상실 '베토벤'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고지서를 갖다놓으라 하셨을 정도"라고 전하기도 했다.

 

책에는 초등학교 5학년 산수 시간에 일본인 흉내를 내는 조선인 담임교사에게 반감을 표시하다 고무 슬리퍼로 폭행당했던 일, 목포로 가서 중학교에 다닐 때 납부금을 내지 못해 울었던 이야기 등도 실렸다.

 

정씨는 "언젠가 스님의 말씀을 글로 한 번 정리해보겠다고 하자 미소를 짓더라"며 "이 책을 보면 기특해 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 내용은 법정의 맏상좌인 덕조스님, 제자 덕현스님, 조카 현장스님의 자문과 감수를 받았다고 출판사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