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名不虛傳). 세계 영화사에서 그들이 거장이라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0 전주국제영화제'의 '회고전'과 '오마쥬'는 영화에 대한 식견을 갖춘 이들에게 백미로 꼽히고 있는 섹션. 세계 영화계의 최전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포르투갈의 페드로 코스타와 동시대 독일 감독 중 가장 논쟁적이고 혁신적이며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인 로무알트 카마카가 '회고전'에 초대됐다.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 감독의 대표작들을 소개하는 '오마쥬'는 '혁명적 시학을 완성한 예술가' 헝가리의 거장 미클로슈 얀초의 작품을 조명한다.
▲ 페드로 코스타-저항과 혁신의 영화미학
영화감독이 스크린 위에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사운드는 세계에서 최초인 것 같아야 한다고 페드로 코스타는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예컨대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코스타의 영화는 분명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우리는 그의 영화 속에서 피와 살을 가진 존재이면서 유령인 듯한 사람들을 볼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절망과 비참의 나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숭고함을 지닌 사람들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관심 있게 지켜 보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흔한 사회비판적 리얼리즘 영화에 어울릴 법한 요소들을 가지고서도 그런 용이한 범주에 속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코스타가 영화 속 요소들을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기 위한 '소재'로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코스타가 쥔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보통 디지털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기동성과 신속성을 미덕이자 장점으로 거론할 텐데, 코스타는 오히려 그 장비를 시선도 대체로 고정시키고 시간도 많이 들이는 데 이용한다. 영화 만들기의 방식과 그 윤리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대안적 방식을 실험하면서 그것을 혁신적인 미학으로 연결시킬 줄 안다는 점에서 코스타는, 다른 훌륭한 시네아스트들이 그랬듯, 영화라는 것 자체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주는 현재의 소중한 영화감독이다.
▲ 로무알트 카마카, 동시대 독일영화의 최전선
올라프 묄러라는 영화평론가는 로무알트 카마카를 가리켜 현재 가장 칭송받는 독일의 영화감독들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자국에서는 여전히 '저주받은 시네아스트'일 뿐이고 정보력이 많은 영화제에서도 풍문으로만 떠도는 이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올해 전주에서 열리는 카마카의 회고전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영화 양쪽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 '미지의 존재'를 비추는 소중한 빛이 될 것이다.
65년생으로 뮌헨의 유명한 대안적 시네클럽을 드나들며 젊은 시절을 보낸 카마카는 80년대 중반부터 슈퍼 8밀리로 단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영화감독으로의 길을 잘 닦아나갔다.
카마카 영화의 한 정점으로 평가받는 <밤의 노래> (2004)는 소수 인물만의 대면을 카메라로 포착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또 다른 실내극이다. 도무지 외출을 꺼리는 남편을 못 견디겠다고 말하는 아내와 자기가 쓴 글을 출판하고자 하지만 좌절감 속에 빠진 남편이 벌이는 하루 동안의 투정과 설전을 보며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아마도 그건 인물의 표정과 시선부터 시각적 구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드러나는 세심함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밤의 노래> 는 정확성에 몰두하는 카마카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라 평가되기도 한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이 영화들과는 다소 상이한 카마카의 영화들도 상영된다. 정치적 다큐멘터리들인 <히믈러 프로젝트> (2000)와 <절멸의 땅> (2004), 음악 속으로 깊게 빠져들게 만드는 육체적 엑스터시의 영화들인 일렉트로닉 3부작(<196BPM>, 2003;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 , 2005; <빌라로보스> , 200)은 카마카 영화 세계를 두루 조망하게 해줄 것이다. 빌라로보스> 악마와> 절멸의> 히믈러> 밤의> 밤의>
▲ 미클로슈 얀초, '학살의 발레'를 안무한 시네아스트
음악의 측면에서 사고하고 리듬의 측면에서 보는 영화감독이라고 미클로슈 얀초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던 한 배우는 그를 적절히 정의했다. 확실히 '안무가'는 이 헝가리의 영화감독에게 잘 들어맞는 용어이다. 우선 그는 그 움직임을 그칠 줄 모를 듯한 긴 호흡의 카메라워크를 안무할 줄 알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 카메라를 가지고 화면 속에서 계속 움직이는 인물들과 그와 함께 유연하게 스크린 안으로 들어왔다가 그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건들을 안무한다. 얀초의 영화는 이렇게 유려한 안무-연출 솜씨로 만들어낸 영화적 제의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제의에 담긴 내용은 그것을 매만지는 손길과는 달리 흉포하고 추악하기 그지없다.
얀초는 자국과 관련된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을 스크린에 옮겨내 이와 같은 영화적 '억압의 제의' 혹은 '학살의 발레'를 연출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사건들을 다소 추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영화를 더 넓은 시대와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고 울림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니까 그의 영화들은 어떤 과거 사건의 영화적 재현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고 유지되는 폭압적 메커니즘에 대한 알레고리인 것이다. 사람들이 얀초야말로 나치 강제 수용소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영화감독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홍성남
* 위 글은 전북일보가 발행한 '2010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중 '거장, 그들이 만든 영화'를 요약한 것입니다. 전문은 전주영화제 현장과 도내 문화공간, 우석빌딩 로비 등에 비치되는 '2010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