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전주국제영화제] 리뷰-개막작 '키스할 것을'

봄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라

추운 겨울의 끝에서 봄이 찾아왔다. 봄은 사랑처럼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간다. 언제 꽃피었는가 하면 또 꽃 진다. 5월의 봄 햇살은 돌 속에 숨은 꽃도 찾아낸다. 들판에 보리들은 파랗게 자라 봄바람을 부르고 도시 근교과수원에는 복숭아꽃 배꽃이 흐트러져 우리들의 마음을 싱숭생숭 들뜨게 한다. 이 좋은 봄날에 '2010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봄과 영화와 그리고 젊은 청춘남녀들이 붐비는 거리에는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다. 나에게도 색다른 사랑이 찾아 올 것 같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키스할 것을> 은 박진오 감독의 장편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추운 겨울비가 내리는 뉴욕의 거리다. 뉴욕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젊음과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세계적인 거리 뉴욕이다. 영화는 번잡한 거리의 수많은 인파들 중에서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두 청춘남녀를 잡는다. 한국인 '준'은 연기에 자신이 있으나,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가 하고 싶은 배역을 받지 못한다. 실망감에 사로잡힌 어느 날 '준'은 역시 연기의 꿈을 안고 뉴욕에 온 '써머'를 만난다. '써머'도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화려한 뉴욕의 거리에서 두 남녀는 운명처럼 만나 끌린다. '준'과 '써머'는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별 볼일 없는 우울한 청춘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기들의 어려운 처지와는 상관없이 사랑의 감정이 싹터 옴을 알게 된다. '준'은 '써머'를 자기가 일하는 곳으로 데려와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노래는 '준'의 사랑을 싣고 '써머'를 향한다. 그러나 아침이 되었을 때 '써머'는 떠나고 없다. '준'은 뉴욕의 어느 길거리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밤하늘의 별을 세며 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 둘 셋 넷.......아홉 ....... 스물, 마흔을 센다. 그러나 그녀는 오지 않는다. 사랑이 거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편리할까. 사랑이 올 때 이게 사랑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은 봄날처럼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오고 간다. 올 때보다 갈 때 사랑은 거짓말 같다.

 

단편영화로 그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은 자기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미국 여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다. 하나의 장면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끌고, 말보다 긴 침묵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한다. 장면과 장면으로 넘어 갈 때, 필름이 끊어진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그 간격이 길어 관객을 당혹하게 한다. 배경음악이 거의 없이 영화는 진행되고 빛의 명암을 고려한 장면으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려 한다. 의미 전달보다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의미를 캐기보다 음미를 권하는 이 영화의 미덕을 관객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감동할 지 두고 볼 일이다. 봄이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하늘거리는 전주천 실버들 아래서 지금 키스하라. /김용택(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