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정치사상가인 칼 프리드리히(C. Friedrich)는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라고 했다. 가장 밑부분인 일반 시민들을 통해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1935년 미국 공화당의 전당대회에서 이 말이 사용되면서 일반화됐다.
모든 식물의 뿌리는 그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주민 하나하나가 식물의 뿌리 같은 존재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들이 해당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함으로써 밑바탕에서부터 민주정치가 실현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풀뿌리'가 중심이 되는 정치를 지향한다.
그러나 중심 주체가 시민 개개인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중앙정당에 예속된 정치, 국회의원에 얽매인 수직구조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게 문제다. 지방자치의 두 핵인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6.2지방선거는 이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민주당의 경선 룰과 공천심사는 중앙당의 개입과 국회의원들의 입맛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정동영의원은 자기사람 심기에 매달렸고 중앙당은 전략공천으로 맞받아 충돌했다. 그로인해 애꿎은 몇몇 후보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밀려나는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또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간 알력 때문에 후보가 느닷없이 교체되기도 했고 생면부지의 선거구로 방출되기도 했다. 경선불복에다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에라잇, 퉤 퉤 퉤.
정당간 경쟁도 없이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정치판에서 주민은 더이상 주인도, 풀뿌리도 아니다. 국회의원이 점지해준 후보는 당선된 뒤 주민 보다는 국회의원의 눈초리를 더 의식할 것이다.
허울 좋은 풀뿌리 민주주의, 이걸 이대로 놔두어야 하는 걸까. 하세헌 경북대 교수(대한지방자치학회회장)는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소위 지역정당의 육성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말한다. 중앙정계와 거리를 둔 지역정당은 지역의 문제를 연구해 온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지역의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지역밀착형의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훼손당하면 그 주인인 시민이 바로잡을 수 밖에 없다. 제도를 개선하고 공천장난을 막을려면 시민의 힘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