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허물자] ⑪경제-(3)금융분야

중앙만 바라보는 수동적 점포 운영…담보·보증대출 관 행서민에겐 높은 문턱

"해뜰 때 우산 주고, 비오면 우산 뺏아간다"

 

도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자금운용에 문제가 없는데도 모 금융기관의 요청을 받고, 금리가 낮은 자금을 대출받아 고금리 예금에 가입해 다소나마 금리차익을 거두고 있다. 반면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B씨는 금융권에서 일종의 꺾기인 보험상품에 가입한뒤 운용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속칭 잘 나가는 기업에게는 금리를 낮춰 대출영업을 하지만, 어려운 기업에게는 고금리 대출도 기피하는가 하면 아예 기존 대출금마저 회수에 나서는 금융권의 영업행태를 보여주는 대조적인 사례다.

 

B씨는 그나마 다행이다. 금융권의 이같은 영업행태는 B씨보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칫 도산 위기까지 몰고 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도산한 한 중소기업인이 "자금난 루머에 휘말리니 금융권을 비롯한 모든 자금줄이 차단되고 빚 갚으라는 독촉만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기업하겠습니까"라고 털어놓은 하소연은 '비오면 우산 뺏아간다'는 업계의 속설을 단적으로 대변해준다.

 

금융권의 벽중에서 일반인들이 가장 체감하는 것은 '높은 문턱'이다. 외환위기 이후 각종 금융제도 및 서비스의 선진화와 도덕적 해이 등이 상당부분 개선됐다고 하지만 이용자들중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턱'으로는 담보나 보증 위주의 대출 관행이 꼽힌다. 사업성과 미래성 등 발전 가능성에 대한 분석보다는 우선 당장 안전한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는 금융권의 관행은 고객들이 쉽게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 차원의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선진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하거나 개발하지 않으면서 고객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려는 금융권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금융권의 담보 의존도가 너무 높은데 이처럼 보수적으로 운용할 경우 이용고객들의 비용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면서 "지역별 보험료 차등화 문제도 금융권이 전문적 노하우로 해결하지 않고, 단순하게 편의적으로 접근한 해프닝"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역금융기관은 대형 금융사들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여건 차이에 기반을 두고 영업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역금융기관이 할 수 있는 분야와 방법을 개발, 대형 금융기관이 할 수 없는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지역밀착영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높은 벽은 지방과 중앙의 벽이라는 시각도 많다. 이같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운용상 나타나는 문턱은 오히려 사소한 문제로 치부될 수 있을 정도다.

 

전북지역의 경우 중앙 의존도가 너무 높아 경제분야 뿐만 아니라, 교육·사회 등 전분야에서 중앙과의 격차가 심화되고, 이로 인해 다시 중앙 의존도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금융 인프라와 각종 제도 및 상품에 대한 정보 격차는 특정 금융기관이나 고객들이 개별적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심할 경우 기업이나 고객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은 키코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주식·펀드투자자중 상당수 피해자들도 금융지식과 정보 격차로 인한 유사 사례로 거론된다.

 

지역내 금융 경영인들의 보수적 사고와 지역민들의 소극·비관적인 자세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역내 최고 경영자를 비롯해 일선 지점장들이 보수적으로 운용하면 종사자들도 상급자들을 따라갈 수 밖에 없고, 지역근무에 대한 비관적인 사고는 소통과 발전의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평협 금융감독원 전주출장소장은 "지역민들이 거대 금융기관과 불리한 여건에서 거래해 손해을 볼 경우 불이익을 받은 것 조차도 모르거나, 구제방법도 모를 때가 많다"면서 "사전적으로 금융지식을 적극 습득하고, 사후적으로는 자기권리를 적극적으로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